아니쉬 카푸어, 삼성미술관 리움서 동아시아 첫 전시회
미술관이란 공간 자체, 그러니까 하얀 벽에다 작품 내걸어 시선을 고정시키도록 유도하는 화이트큐브 자체가 남자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이리저리 힐끗대는 사냥꾼 습성이 짙게 밴 남자에게 ‘닥치고 작품!’을 외치는 꼴인데, 이건 변기에 앉아서 소변 보라는 마누라의 지청구처럼 느껴질 수 있다. 내년 1월 27일까지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아니쉬 카푸어(58)의 전시장은 여기다 하나를 더했다. 리움의 거대한 화이트큐브만도 벅찬데, 이번에 전시된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딱 한단어 밖에 생각 안 난다. ‘여근곡’(女根谷). 그 왜, 백제군 때려잡았다는 선덕여왕의 일화 말이다.![미술관 벽을 뒤로 뚫어 고운 노란색을 입혀둔 작품 ‘노랑’(yellow)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카푸어.](https://img.seoul.co.kr/img/upload/2012/10/26/SSI_20121026183435.jpg)
![미술관 벽을 뒤로 뚫어 고운 노란색을 입혀둔 작품 ‘노랑’(yellow)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카푸어.](https://img.seoul.co.kr//img/upload/2012/10/26/SSI_20121026183435.jpg)
미술관 벽을 뒤로 뚫어 고운 노란색을 입혀둔 작품 ‘노랑’(yellow)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작가 카푸어.
이 깊은 공간감이 폐허와 상실이 아니라 긍정적 생산의 공간임을 주장하는 작품은 벽을 볼록하게 솟아오르게 한 ‘내가 임신했을 때’(When I am pregnant), 20t의 거대한 붉은 왁스 덩어리를 1시간에 한 바퀴 도는 시계형태의 운동으로 정리해나가는 ‘나의 붉은 모국’(My Red Homeland)이다. 임신한 상태, 붉은 이미지라는 것은 어떤 생성을 드러내지만, 거대한 순환고리라는 점에서 그것이 꼭 ‘진보’라 단정할 필요는 없다.
으스스한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눈을 돌린 곳은 야외 전시장. 그동안 리움미술관을 상징했던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대한 거미 ‘마망’을 수장고로 밀어넣은, 카푸아의 설치작품들이 있어서다. 잘 닦인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한 작품들이니 야외에서 작렬하는 빛을 받아 번쩍번쩍한다. 아, 드디어 양기 넘치는 작품들인가. 그런데 나가봤더니 젠장, 볼록 거울이 아니라 오목거울이다. 그러니까 구멍을 안 뚫었다 뿐이지 깊이 빨아들이는 공간감은 매한가지란 뜻이다. 작가 스스로도 여성 작가의 작품처럼 보인다는 평이 좋다 하니 말 다 했다.
1990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작가, 1991년 영국 터너상 수상에 이어 지난 런던올림픽 상징조형물 ‘궤도’를 선보인 카푸어는 영국이 내세우는 대표 작가로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 최초의 개인전이다. 일반 8000원. 초중고생 5000원. (02)2014-69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2-10-2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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