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계열 ‘물’시리즈로 조명받는 80대 老대가 안영일

단색화계열 ‘물’시리즈로 조명받는 80대 老대가 안영일

입력 2015-10-19 16:52
업데이트 2015-10-1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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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 동안 그림만 그리며 살았다. 나와 그림은 이제 분리될 수 없는 것, 바로 나 자신이 되었다. 그림은 내게 있어 존재의 표현이고 이유이며, 소통이고 해방이다.”

 재미교포 화가 안영일(83)은 단색화 계열의 작품 ‘물’ 시리즈로 미국에서 먼저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다. 2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거동이 불편한 상태에서 대작들을 완성해 지난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재 한국문화원 갤러리와 4월 롱비치미술관에서 선보였던 그의 작품을 LA카운티미술관에서 한 점을 구입했고, 최근 열린 K옥션 인터넷 경매에서도 55차례의 경합 끝에 낙찰됐다. 이어 지난 7~1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14회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서도 작품 대부분이 판매돼 치솟는 인기를 입증했다. 그의 작품은 빨강, 초록, 검정, 흰색, 청색 등 한 가지 색으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나이프로 그려진 사각의 작은 점들로 이뤄져 있다. 그 안쪽으로 보색의 터치가 수없이 반복돼 겹쳐진 것이 속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같고, 멀리서 보면 아스라이 수평선도 보일 것 같다.

 심연을 품은 잔잔한 바다 위에 햇살이 부서져 오색으로 반사되는 듯한 그의 작품은 30여년 전 바다에서 겪은 신비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개성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운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그림을 접했던 안 화백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인 후원자의 초청으로 1967년 도미했다.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한국에선 구할 수 없었던 피아노와 클라리넷, 첼로 등 악기를 구입해 배우면서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둘러싸고 컬렉터와 전속 화랑 간 송사가 10년을 끌면서 스스로 작가 생활을 포기한 채 작품을 모두 파기하고 바다로 떠났다. 어느 날 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중 그는 짙은 안개를 만나 몇 시간 동안 바다에서 길을 잃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고독감에 헤매던 중 안개가 걷히면서 나타난 바다를 보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마치 진주로 이뤄진 밭처럼 수만 가지 색으로 반짝이는 바다였다.

 KIAF 행사장에서 만난 안 화백은 당시를 회상하며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 다시 태어났다”며 “그날 감동은 평생 그려도 모자랄 소재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뇌졸중 후유증 때문에 말하는 게 수월하지 않지만 그 감동의 순간을 되새길 때에 그는 활기가 넘쳤다. 손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작업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지금도 하루 10시간씩 캔버스 앞에 선다. 사다리를 놓고 기어올라가 나이프로 작업하다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모든 에너지를 그림 그리는 데 사용하고 있다. 뒤늦게라도 내 작품을 알아주는 것이 즐겁고 고맙다”고 밝혔다.

 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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