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왕자에게 줬던 갑옷과 투구의 재현품. 류재민 기자
한국문화재재단은 19일 서울 중구 덕수궁 덕홍전에서 다음날 개막하는 ‘1899, 하인리히 왕자에게 보낸 선물’ 특별전을 사전 공개했다. 이번에 전시된 유물은 하인리히 왕자가 1899년 6월 8~20일 내한했을 당시 고종 황제가 줬던 선물을 오늘날의 장인들이 재현한 것이다.
하인리히 왕자에게 준 선물은 동아시아함대 사령관이기도 했던 그의 신분을 고려한 것이다. 붉은색의 갑옷은 어깨에 4개의 발톱을 가진 용으로 장식했고, 목 부위에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로 알려진 질경이 잎 모양으로 꾸몄다. 질경이는 수레보다도 앞서 나갈 정도로 빠르다는 의미가 있는데, 용맹함과 무예가 뛰어남을 드러내는 장식이다.
유물들은 현재 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올해 한독 수교 140주년을 맞아 포르쉐코리아의 후원으로 장인들이 새로 만드는 작업에 나섰다. 홀가 게어만 포르쉐코리아 대표는 “이 사업은 국가무형문화재를 중심으로 한국의 고유한 장인 정신을 보존하는 사회공언 캠페인으로 시작됐다”면서 “본 사업을 통해 한국 문화와 그 속에 깃든 매혹적인 역사에 대해 겸손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인사를 전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입사장 보유자 이경자(왼쪽)씨와 이수자 이유나씨가 19일 덕수궁 덕홍전에서 갑옷과 투구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류재민 기자
장인들은 입을 모아 쉽지 않은 작업이었음을 털어놨다. 두정(頭釘·갑옷 미늘을 고정하는 못머리)을 작업한 이유나씨는 “실물을 직접 보고 실측도 하고 진행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사진 자료만 보고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다”면서 “작업에는 별로 두려움이 없었는데 작업 전에 계산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오늘 계산하면 맞는 것 같다가 다음날 하면 어디선가 오류가 나는 일이 생겨 중압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직접 만들었던 장인의 마음을 상상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이씨는 “유물은 그 시대 상황이나 장인의 개인적 상황이 반영되는데 우리가 속속들이 알 수 없어서 ‘왜 이렇게 했을까’ 질문을 많이 했다”면서 “볼 게 사진밖에 없으니 매일 눈이 빠져라 보다가 시력이 나빠져 안과에 갈 정도였다”고 떠올렸다.
힘들게 복원해냈기에 그만큼 뿌듯함도 컸다. 여러 장인이 합심해 만들었기에 오차 없이 재현할 수 있었다. 이씨는 “과거의 모든 장인들이 정말 대단했구나 생각했다”면서 “만들어 놓고 보니 걱정한 거에 비해서는 괜찮더라. 다음에 또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침선장 전승교육사 박영애씨가 19일 덕수궁 덕홍전에 전시된 갑옷과 투구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류재민 기자
다른 여러 궁중의상은 만들어봤지만 갑옷 제작은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많았다. 실물이 아닌 기록과 사진만 보고 바느질 간격을 얼마나 해야하는지, 실이 얼마나 필요한지 등을 밤낮없이 치열하게 고민했다.
박씨의 작업은 입사장과 긴밀한 협조로 이뤄졌다. 오랜 시간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며 실수 없는 갑옷을 만들고자 애를 썼다. 박씨는 “옷을 만드는 건 침선장 책임이라 오와 열이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했다”면서 “다른 장인들께도 누가 되면 어쩌나 했지만 그대로 다 도와주실 거란 믿음을 가지고 감사한 마음으로 했다”고 말했다.
여러 장인이 공들여 완성한 유물은 20일부터 7월 2일까지 덕수궁 덕홍전에 공개된 후 덕수궁에서 관리한다. 박씨는 “만들 때는 애지중지 노심초사했는데 잘 키워서 출가시키는 것 같다”면서 “갑옷한테 큰 사고 없이 잘 나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고 웃었다.
류재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