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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손 쓰며 연이틀 밤샘 수술…‘참된 의사’의 마지막 출근길

양손 쓰며 연이틀 밤샘 수술…‘참된 의사’의 마지막 출근길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23-06-20 09:47
업데이트 2023-06-2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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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10분 거리 살며 환자 치료
숨진 당일 오전 3시까지 수술해
집에서 잠시 쉬고 병원가다 참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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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주석중 교수 별세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주석중 교수 별세 17일 교통사고로 숨진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주석중 교수. 주 교수는 병원 인근에 거주지를 정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응급환자 수술을 담당해 왔다. 2023.6.18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페이스북.
“많은 이를 죽음에서 살려놓고, 정작 본인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대한의사협회 입장문 중
지난 주말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숨진 주석중(62)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에 대한 애도가 줄을 잇고 있다. 평소 환자밖에 모르는 ‘참된 의사’였던 그는 심장 수술 분야의 권위자로서 지난 14일부터 연이틀 밤샘 수술을 했고 사고 당일 오전 3시 응급수술을 마친 뒤 잠시 귀가했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던 중 참변을 당했다.

주 교수는 1988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세브란스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를 수료했고, 1998년 아산병원 흉부외과 전임의로 근무를 시작했다.

고인은 응급 수술에 대비한다며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집을 구했고, 양손으로 수술을 빨리빨리 잘하고 싶다며 왼손으로 젓가락을 집고 이불에다 바느질 매듭을 연습할 만큼 헌신적인 의사였다.

주석중 교수는 2015년 아산병원 소식지에 “힘들지만 환자가 회복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되다”며 사람 살리는 일이 자신의 천직이라는 글을 적기도 했다.

그는 “흉부외과 의사는 공휴일 구분 없이 항시 응급수술을 위해 대비하며 생활할 수밖에 없어 스트레스가 크고 육체적으로도 버겁다”면서도 “하지만 수술 후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될 때 가장 큰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고 수술할 때까지 힘들었던 일을 모두 잊는다”고 말했다.

“감사한 교수님 명복을 빕니다”
18년 전인 2005년 주 교수가 집도한 자신의 부친 수술을 언급한 A씨는 “아버지가 대동맥류 심장질환으로 쓰러지셨는데 당시 유일하게 수술이 가능한 곳이었다”며 “새벽시간 아무 때나 출몰하시면서 환자들을 돌보셨다. 크리스마스에도, 연말연시에도, 명절 새벽에도 환자에게 열정적이셨던 분”이라고 회상했다.

주 교수에게 수술을 받았다고 밝힌 B씨는 SNS에 “나를 살려주신 주치의 선생님이셨는데, 8일에 뵌 게 마지막일 줄 몰랐다”며 “불안해하는 내게 ‘수술 잘해줄 테니 걱정 말라’며 안심시켜 주신 분이셨다. 덕분에 저는 살아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많은 이들이 “밤낮없이 중환자 수술만 하다가 가셨다” “성품이 좋으셔서 별명이 ‘주님’이었다” “저승사자와 멱살 잡고 싸우시던 분” 등 고인과의 추억을 SNS에 남겼다.

한편 주 교수의 자전거를 친 트럭 운전사가 불구속 입건된 가운데, 당시 보행 신호는 빨간불이었고 우회전 전용도로에서 난 사고라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 위반은 아닌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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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주석중 교수 빈소 조문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주석중 교수 빈소 조문 19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주석중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2023.6.19 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는 “심장혈관 분야 권위자인 흉부외과 의사 주 교수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수많은 응급 환자들의 생명을 살린 고인은 정작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어 “고인은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거처를 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응급환자의 수술 등을 도맡아 왔다. 30년 넘게 의료 현장에서 의술을 펼치며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곧바로 수술실로 향했다. 심장혈관 흉부외과 분야에서 고도의 역량을 발휘해 오신 대표적인 석학이자 최고 임상 전문가를 잃었다는 사실에 비통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심장혈관 흉부외과는 흉부외과에서도 업무 난도가 높고 응급 수술이 잦으며 증가하는 법적 소송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전공의 지원자들이 급격히 감소해 왔다”며 “이런 현실에서 고인과 같은 인재를 잃은 것은 의료계를 넘어 국가적으로 매우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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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주석중 교수 빈소 조문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주석중 교수 빈소 조문 19일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주석중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2023.6.19 연합뉴스
현실로 다가온 ‘흉부외과 붕괴’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흉부외과 의사 수는 1500~1600명 가량된다. 내년부터 신규 배출되는 전문의(21명)보다 은퇴하는 전문의(32명)가 더 많아져 흉부외과 의사 수는 자연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 중도 이탈률은 필수의료 진료과목 중 가장 높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간(2018~2022년 7월) 필수의료 과목의 전공의 중도 이탈률은 10.5%로 전체 평균 9.3% 보다 높았고, 흉부외과가 14.1%가 가장 높았다.

흉부외과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고난도 수술이 많아 숙련된 전문의는 물론 첨단 장비와 시설, 마취과 전문의, 심장내과 전문의, 심폐기사, 전문간호사 등 지원 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수술 실력과 경험이 풍부한 의사라 할지라도 이런 인프라 없인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거나 살릴 수 없다.

지역 흉부외과 의료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위기가 커진 가운데 전공의 배출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의료시스템, 인프라의 변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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