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아버지 명복 기원한 ‘용주사 대웅보전’ 보물 된다

정조가 아버지 명복 기원한 ‘용주사 대웅보전’ 보물 된다

입력 2017-05-19 09:52
업데이트 2017-05-1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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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1752∼1800)가 부친인 사도세자(1735∼1762)의 명복을 빌며 세운 건물인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이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사도세자(추존왕 장조)의 묘소인 융릉(隆陵·옛 현륭원) 인근에서 제사 물자를 조달하는 사찰로 조성된 용주사의 대웅보전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19일 밝혔다.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은 왕실이 계획부터 공사 감독까지 주도한 건물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 ‘현륭원 의궤’에 공사 내용과 재원, 인력 등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 왕실은 정조 14년(1790) 2월 19일 용주사 대웅보전 공사를 시작해 4월 15일 지붕의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을 했다. 불상 봉안식은 그해 9월 29일에 열렸다. 대웅보전은 건립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됐으나, 단청을 제외하고는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양식상으로는 공포(하중을 받치기 위해 대는 부재)가 여러 개인 다포식 건물이다. 지붕은 궁궐과 사찰 건축물에 많이 쓰인 팔작지붕 형태다.

대웅보전은 장대석을 사용한 기단, 용마루 끝에 얹는 조형물인 취두, 지붕 마루를 회로 감싸 바르는 양성바름 기법 등 여러 면에서 시공에 정성을 기울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용주사 자리에는 본래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갈양사가 있었으나, 이 사찰은 고려시대에 소실됐다. 용주사는 삼문, 천보루(天保樓), 대웅보전이 일렬로 배치돼 있으며, 스님들의 살림 공간인 승당과 선당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용주사 대웅보전은 조선 후기 왕실 건축물의 권위와 격식, 시대성을 잘 간직하고 있다”며 “30일간의 예고 기간에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 지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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