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朴정부 초기부터 신경림·박범신 등 배제… 번역원 블랙리스트 확인”

[적폐청산] “朴정부 초기부터 신경림·박범신 등 배제… 번역원 블랙리스트 확인”

홍지민 기자
홍지민 기자
입력 2017-10-30 23:02
수정 2017-10-31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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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발표

박명진 등 산하기관장 개입 확인
청와대 풍자 연극 ‘개구리’ 등 국립극단 작품 검열·결말 수정
문체부, 국립극단 단장 통해 조치
김준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소위원장이 30일 서울 종로구 KT빌딩에서 진행된 기자브리핑에서 진상조사위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조사·확인한 블랙리스트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seoul.co.kr
김준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소위원장이 30일 서울 종로구 KT빌딩에서 진행된 기자브리핑에서 진상조사위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조사·확인한 블랙리스트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손형준 기자 boltago@seoul.co.kr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장관님 면담 참고자료(2015.10.2) 중 일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장관님 면담 참고자료(2015.10.2) 중 일부.
박명진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장들이 구체적으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실행 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앞서 일부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 한국문학번역원 관련 지원 배제도 처음 확인됐다.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국립예술단체 작품 내용에 대한 사전 검열이 이뤄진 정황도 공개됐다.

문체부 산하 민관 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30일 서울 광화문 KT빌딩에서 브리핑을 열고 2015년 10월 박 전 위원장이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을 만나 예술 현장 동향을 보고하고 블랙리스트 관련 현안을 협의한 사실을 보여 주는 ‘장관님 면담 참고자료’ 문건을 공개했다.

블랙리스트 의혹이 국정감사에서 처음 제기되며 비판 기류가 일던 당시 작성된 이 문건에는 박계배 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대표가 박 전 위원장에게 예술 현장 동향을 보고하며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내용도 담겼다.

김준현 진상조사 소위원회 위원장은 “박 전 위원장과 박 전 대표가 블랙리스트 실행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관련 사안을 직원들과 협의하며 실제 집행에 관여한 사실을 보여 주는 문건”이라고 지적했다.

진상조사위는 또 한국문학번역원이 2015, 2016년 문체부 지시를 받고 이시영, 김수복, 김애란, 김연수, 신경림, 박범신 등 문인들을 해외교류 사업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음을 시사하는 자료도 공개했다.
신경림 시인. 연합뉴스
신경림 시인.
연합뉴스
박범신 소설가
박범신 소설가
자료에 따르면 이시영·김수복 시인은 2016년 2월 미국 하와이대 및 UC버클리대 한국 문학 행사에서, 김애란·김연수 소설가는 2015년 11월 미국 듀크대학의 북미 한국 문학 행사에서, 신경림·정끝별 시인, 박범신 소설가는 지난해 9월 중국 항저우 한국 문학 행사에서 배제됐다. 김 위원장은 “특정 작가 지원 배제에 대한 문체부 지시가 일상적, 지속적으로 이뤄진 사실을 확인했다”며 “구체적인 배제 사유와 추가 사례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을 풍자해 화제를 모았던 박근형 연출가의 연극 ‘개구리’에 대한 현안 보고 문건도 공개됐다.
국립극단 기획공연 ‘개구리’ 관련 현안 보고 중 일부.
국립극단 기획공연 ‘개구리’ 관련 현안 보고 중 일부.
2013년 9월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에서 작성한 이 문건에는 당시 국립극단 기획공연으로 무대에 올려진 ‘개구리’의 정치 편향적인 내용을 수정하도록 조치한 내용이 담겨 있다. ‘개구리’는 주인공이 부조리한 현실을 구원할 ‘그분’을 찾기 위해 저승으로 떠나지만 ‘그분’은 본인 대신 주인공의 어머니를 이승으로 보낸다는 내용이다.

본래 결말은 주인공이 ‘그분’을 세상에 모시고 오는 것이었으나 문체부는 그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하고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이 ‘기말고사 커닝’으로 풍자됐다고 분석, 당시 손진책 국립극단 단장을 통해 박 연출가로 하여금 결말을 수정하도록 조치를 취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적 풍자도 대폭 완화됐다.

박 연출가는 문체부 지시라는 사실을 모른 채 내용 수정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블랙리스트가 실행됐고, 단순 지원 배제뿐 아니라 작품 내용에 대한 검열까지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문건”이라며 “2013년 국립극단 후속 작품은 물론 이후 전 국립예술단체 공연에 대해 내부 검열 시스템이 운용됐을 가능성이 커 관련 조사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2017-10-3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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