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먹물 대신 디지털 탁본… 더 선명해진 역사

먹물 대신 디지털 탁본… 더 선명해진 역사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2-09-18 20:34
업데이트 2022-09-19 19:2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장선필 문화유산사진연구소장

글자 사진 찍어 뚜렷한 판독 가능
불교 유물의 도장 주인도 알아내
韓 목판 40만~50만점 보존 목표

이미지 확대
장선필 문화유산사진연구소장이 개발한 디지털 탁본(오른쪽). 전통 탁본(왼쪽)보다 선각 부분이 훨씬 선명하고 문화재가 훼손될 우려도 없다. 문화유산사진연구소 제공
장선필 문화유산사진연구소장이 개발한 디지털 탁본(오른쪽). 전통 탁본(왼쪽)보다 선각 부분이 훨씬 선명하고 문화재가 훼손될 우려도 없다.
문화유산사진연구소 제공
“한국 문화재, 나아가 세계 문화재를 보존하고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탁본은 동양문화권에서 하나의 기술이자 그 자체로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탁본은 작업 과정에서 문화재가 훼손될 우려가 있어 탁본을 선명하게 뜨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오래 방치된 목판 같은 경우 워낙 건조해 먹물을 뿌려도 곧바로 흡수돼 작업자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장선필 문화유산사진연구소장. 경주 류재민 기자
장선필 문화유산사진연구소장. 경주 류재민 기자
지난 16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22 국제문화재산업전’에서 만난 문화유산사진연구소장 장선필(53) 박사는 훼손될 우려 없게 사진으로 디지털 탁본을 뜬다. 얼핏 카메라로 그냥 글자 사진을 찍어 탁본처럼 보이게 하는 일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일련의 깐깐한 작업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학에서 학사, 석사로 사진을 전공한 그는 어느 날 박물관 유물 촬영을 하다가 탁본을 뜨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여겼다. 문화재 훼손 우려가 있을뿐더러 결과물이 선명하게 나오는 것도 아닌데 굳이 탁본을 해야 하느냐는 의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장 박사는 디지털 탁본 연구를 위해 2009년 문화재과학 박사 과정에 들어가게 됐다.

장 박사는 “내가 아는 사진 기법을 통해 새로운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어차피 광학 쪽이니 물리학과 지도교수님을 찾아가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도와주셨다”고 말했다. 자외선, X선, 가시광선 등으로 문화재를 분석하는 연구는 전례 없는 길이었기에 “내가 모르는 거지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답을 찾아갔다.
‘경주 황복사지삼층석탑 금동사리함 명문’원본(왼쪽)과 디지털 탁본.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 전시됐다. 문화유산사진연구소 제공
‘경주 황복사지삼층석탑 금동사리함 명문’원본(왼쪽)과 디지털 탁본.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 전시됐다. 문화유산사진연구소 제공
수년간의 연구 끝에 알고리즘을 활용해 탁본을 뜨는 방법을 찾아냈다. 지난달에는 특허도 받았다. 장 박사는 2D로 작업하는 그의 디지털 탁본이 3D 디지털 탁본보다 왜곡이 적고 가격이 저렴하다고 설명했다.

부스에 걸린 그의 작업물은 기존의 탁본 자료보다 선명했다. 원자료보다 글씨가 두꺼워지는 왜곡도 없었고, 기존의 탁본으로 잘 보이지 않던 글씨의 정체도 밝혀낼 수 있었다. 장 박사는 “‘선각대사편광탑비’도 디지털 탁본을 통해 기존 책자랑 비교해 308자를 바로 잡았고 48자를 새로 찾았다”고 밝혔다.

글씨 위에 중첩된 도장 낙관도 따로 추출할 수 있었다. 장 박사는 “송광사 고경 스님이 ‘옥룡사증시선각국사 비명병서’에 찍힌 도장이 누구 것인지 알고 싶다고 의뢰했다”면서 “광학의 세계에선 몇만 배 확대하면 층이 다른 게 보일 거라 생각해 살펴보니 ‘옥룡사 승도 주지 인’이 나왔다”고 말했다.
옥룡사증시선각국사 비명병서에 찍힌 도장만 따로 추출하자 ‘옥룡사 승도 주지 인’ 글씨가 나왔다. 문화유산사진연구소 제공
옥룡사증시선각국사 비명병서에 찍힌 도장만 따로 추출하자 ‘옥룡사 승도 주지 인’ 글씨가 나왔다. 문화유산사진연구소 제공
기록 문화재에 대해 활용 가치가 높은 신기술이라 많은 관계자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발주를 하려면 검증된 선례가 필요한 공공기관의 특성상 아직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훼손이 심하고 볼록한 구조라 종이 탁본 작업이 어려운 ‘경주 황복사지삼층석탑 금동사리함 명문’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향적으로 의뢰한 덕에 디지털 탁본 자료를 확보하고 전시할 수 있던 사례다.

장 박사는 “목판은 수명이 유한하다는데 팔만대장경이 제작된 지 벌써 800년 가까이 됐다”면서 “전통 인출본 방식으로 복각하면 두꺼운 글자로 하게 되지만 사진으로 하면 원형 그대로 복각할 수 있다. 어떻게든 디지털 자료로 남기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목판이 40만~50만점 있다는데 자료를 만들고 보존하는 데 역할을 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경주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2022-09-19 19면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