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51>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51>

입력 2013-06-10 00:00
업데이트 2013-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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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주영 그림 최석운

살담배가 타들어가는 곰방대를 들고 귀를 기울이던 곽개천이 말했다.

“성님…… 저는 지난날 포수질했던 경험으로 어렴풋이 눈치채긴 했으나, 긴가민가하였습니다. 성님처럼 조리 있게 따져 보지는 못했습니다.”


“적굴 놈들은 미련한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바로 우리 코앞까지 기어들어서 우리의 동정을 속속들이 염탐했네. 양식과 전대를 어떤 물상객주에서 조달하고 어디에 숨겨두고 다니는지, 어떤 염전이나 거간 들과 거래를 트고 지내는지 샅샅이 염탐하고 다녔다네. 내성의 윤기호도 그들과 내통하고 있었네. 지난번 임자와 우리 동무들을 꼬드겨서 단골 숫막으로 가, 그 왈짜들에게 갖은 수모를 당하지 않았나. 그것은 허물이 많은 윤기호가 그들로부터 협박을 당해 우리 동무들의 행색을 보여 달라는 요구에 시달렸던 나머지 저지른 일일세. 운수납자로 가장한 놈은 십이령길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우리 숙소참이 어디고 나루에 닿으면 도강처(渡江處)는 어디며 밥자리는 어딘지, 내성 내왕 행보가 며칠이나 걸리고 어떤 동무들이 짝패가 되어 십이령을 넘나드는지 우리를 그림자처럼 뒤따라다니고 있었네. 그래서 해동머리께가 되면 필경 택일하여 우리를 한꺼번에 덮칠 계산만 하고 있었네. 이 첩첩산중도 보름만 넘기면 해토가 될 터, 생각하면 등골에 진땀이 흐르네. 이렇게 소상하게 우리 행로를 염탐하고 있다는 것은 첫번째, 그 적굴의 두령이란 놈이 아주 영특하고 치밀하단 뜻이겠는데, 이것은 아마도 글줄깨나 읽은 내력이 있는 놈이 분명하다는 얘기야. 이렇게 염탐을 치밀하게 한다는 것은, 저들의 수효가 많지 않아 무작정 우리 상대를 덮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나.”

“윤기호로 말하면 우리 십이령 소금 상단과는 10년 숙객으로 흉허물 없이 지내는 사이가 아닙니까. 내성에서는 괄시 못 할 소금 도가를 경영해서 화식한 사람이 도둑의 접주 노릇을 하고 있다니…. 성님 말씀이 옳다면 우리 행중은 그동안 떼송장 날 줄 모르고 통방이 속을 수시로 들락거린 셈입니다…. 관변의 앞잡이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만, 도둑의 잡이는 난생처음입니다.”

곽개천의 좁은 미간에 잔뜩 서린 적의를 눈치챈 정한조의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차제에 우리가 먼저 일어나 적굴을 도륙내야 하네.”

“성님 말씀대로 따른다 하여도 3, 40이 적은 수효입니까. 우리는 뭉쳐보았자. 차 떼고 포 떼면 2, 30이 아닙니까. 추수가 끝나는 겨울철이어야 행상 길을 나서는 도부꾼이나 삯전이나 바라고 행상 길을 나서는 차인꾼 들은 거개가 가솔을 거느린 겁쟁이고, 흔치는 않으나 원상들 중에도 식솔을 거느린 동무가 있지 않습니까. 적굴 놈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운다는 것은 깔딱낫으로 고목 찍기가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모르는 것은 아닐세. 다행히 반수 어른께서 울진 수령을 찾아가 병장기를 얻어 쓰도록 합의하였으니, 잘하면 우리에게 승기가 있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통방이:쥐덫

2013-06-1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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