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플라멩코로 그리는 자유와 욕망…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에너지

[리뷰] 플라멩코로 그리는 자유와 욕망…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에너지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1-01-26 18:55
수정 2021-01-2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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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정동극장 개막…2018년 초연 이후 더욱 감각적 무대
‘제작자 변신’ 정영주·무대 복귀 이소정 압도적 카리스마
스페인 배경으로 하는 스토리 플라멩코로 힘있게 표현

지난 22일 정동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한 장면. 정동극장 제공
지난 22일 정동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의 한 장면.
정동극장 제공
흑과 백, 억압과 자유, 폭력과 사랑, 남성과 여성…. 지난 22일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서 첫 시작을 알린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에는 온갖 대립이 얽혀 있다. 무대 곳곳에 보이는 장치는 물론 극의 내용, 배우들의 연기와 몸짓 모든 것이 90분간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도록 팽팽하다.

빈 무대부터 마음을 바짝 조이게 한다. 정동극장의 프로시니엄(아치형) 형태 무대는 아무 배경도 없는 흰 바탕 벽과 사이사이 기둥 모양으로 뚫린 공간들이 열을 짓고 있다. 밝은 색 조명이 더해져 따뜻한 듯하면서도 왠지 숨이 막힌다. 가족들을 보호하는 공간이 돼야 할 집이 오히려 그들을 옥죄는 감옥이 돼 버린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그 자체를 보여 준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1930년대 초 스페인 남부 지방 한 마을에 사는 여인 베르나르다 알바가 두 번째 남편의 8년상을 치르는 동안 다섯 딸에게 극도로 절제된 삶을 강요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알바는 “이제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라는 선언과 함께 “내 보호 안에서만 편안하게 숨 쉴 수 있지”, “여기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라고 말하며 딸들에게 검은 상복을 입히고 수나 놓으며 지내도록 한다. 2018년 초연에서 알바를 연기했다가 직접 라이선스를 따 와 제작자로도 변신한 정영주와 2014년 ‘태양왕’ 이후 7년 만에 뮤지컬 무대에 복귀한 이소정의 카리스마는 등장부터 압도적이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정동극장 제공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정동극장 제공
그러나 첫째 딸이 젊고 잘생긴 청년 뻬뻬와 결혼을 약속하게 되면서 자매들은 애써 감춰 둔 욕망을 터뜨린다. 언니와 결혼하기로 한 뻬뻬에게 사랑을 느낀 동생들이 밀회를 즐기거나 그의 사진을 훔치는 등 사랑과 질투, 온갖 욕구가 뒤엉켜 갈등이 증폭된다.

극을 풀어 가는 공연의 백미는 플라멩코다. 손뼉과 발바닥 소리가 만드는 리듬만으로도 경직 속에 꿈틀거리는 자유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빨강, 초록 등 원색 조명 속에서 펼쳐 내는 강렬한 플라멩코 춤사위는 폭풍우 같은 욕망으로 뒤덮인 내면과 고뇌를 극대화한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무대에 오르는 18명의 배우들. 저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이들의 힘이 모여 어떤 무대보다 강렬하고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정동극장 제공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무대에 오르는 18명의 배우들. 저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이들의 힘이 모여 어떤 무대보다 강렬하고 압도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정동극장 제공
무대를 채우는 여성 배우 10명은 이처럼 오로지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극을 이끈다. 이번 재연 무대는 더블 캐스팅으로 모두 18명이 모였다. 2018년 우란문화재단에서 초연한 ‘베르나르다 알바’는 당시 ‘미투 운동’ 분위기에 힘입어 여성 서사극으로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이번에 올린 작품은 더욱 넓어진 무대에서,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폭력의 사슬과 그를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를 훨씬 더 강렬해진 에너지로 쏟아 낸다. 연태흠 연출도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여성들의 서사이기도 하지만 역사로부터 만들어진 폭력의 순환 구조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배우들과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두 자리 띄어 앉기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개막하며 어려운 시기를 뚫겠다는 의지까지 더해진 공연장의 공기마저 색다른 느낌을 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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