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리고 튕기고… 지금까지 이런 피아노는 없었다

두드리고 튕기고… 지금까지 이런 피아노는 없었다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3-01-04 20:14
업데이트 2023-01-0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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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혁명 꿈꾸는 김재훈

“인간 고통, 예쁜 소리로 표현 못 해”
버려진 피아노 분해해 3개 악기로
낭만 선율 벗어나 파격 예술 창조
콩쿠르 집중하는 한국 문화 일침
14~15일 대학로예술극장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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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이 피아노를 분해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새로 제작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본인 제공
김재훈이 피아노를 분해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새로 제작한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본인 제공
피아노는 어떤 악기일까. 피아노는 어떤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건반을 두드려 누가 더 아름답게 연주하는지 겨루는 게 당연해진 세계에서 이렇게 물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할지 모른다.

그런데 피아노는 꼭 그래야만 할까. 완성된 피아노 앞에 앉아 잘 만든 클래식을 연주하는 관습에서 벗어나면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소리가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피아노를 분해하고 재조립해 두드리고 튕기는 젊은 음악가 김재훈(37)의 반항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김재훈은 오는 14~1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김재훈의 P.N.O’를 선보인다. 기존의 피아노 연주에서 벗어나 피아노의 확장성을 실험하는, 일종의 피아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무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이 이번에 음악 분야를 신설했는데 치열한 경쟁을 뚫고 김재훈의 공연이 선정됐다.

서울대 작곡과를 나온 ‘낭만파’ 음악가였던 그는 2019년 ‘휴먼 푸가’의 음악감독을 하면서 세계관의 변화를 겪게 된다. ‘휴먼 푸가’는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쓴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연극화한 작품이다. 지난 3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만난 김재훈은 “인간이 고통당하는 내용을 다루다 보니 예쁜 소리만으로는 안 되겠더라. 고통을 표현하고자 현을 내리치기도 하고 피아노 내부를 긁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위험 부담이 컸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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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피아노를 한 대 주워다 의자는 아프리카의 타악기처럼 음의 높낮이를 둔 타악기(왼쪽)로 개량했고, 코끼리 상아로 피아노 건반을 만드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코끼리 울음소리를 내는 악기(가운데)로 탈바꿈시켰다. 업라이트 피아노 본체에 장식 다리와 페달, 현 등을 재구성해 음질을 바꾼 프리페어드 피아노(오른쪽)는 기존 피아노와 결이 다른 연주를 보여 준다. 본인 제공
그는 피아노를 한 대 주워다 의자는 아프리카의 타악기처럼 음의 높낮이를 둔 타악기(왼쪽)로 개량했고, 코끼리 상아로 피아노 건반을 만드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코끼리 울음소리를 내는 악기(가운데)로 탈바꿈시켰다. 업라이트 피아노 본체에 장식 다리와 페달, 현 등을 재구성해 음질을 바꾼 프리페어드 피아노(오른쪽)는 기존 피아노와 결이 다른 연주를 보여 준다.
본인 제공
이를 계기로 오선지에 갇힌 낭만의 선율에서 벗어나기로 한 그는 피아노의 미래를 찾아 여러 곳을 다니다 무수히 많은 버려진 피아노를 마주하게 된다. 유기견을 입양하듯 피아노를 가져왔고 그것을 분해해 3개의 악기를 만들어 냈다. 김재훈은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는 자신이 잘 만들던 악기만으로도 훌륭한 제작자로 살 수 있었지만 굳이 피아노 제작에 도전했다”면서 “완성에서 미완성으로 나아가려고 했던 시도들, 깨트리고 분해하려는 시도들이 있어 피아노라는 명작이 태어났다”고 했다. 아름다운 연주에 박수를 보내는 기존의 문화에서 벗어나 혁명을 꿈꾸는 그의 패기는 아름답게 완성된 세계를 깨트려 또 다른 미를 창조한 예술 거장들 못지않았다.

자신이 목격한 피아노들의 사연을 영상과 함께 풀어내는 김재훈의 무대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공연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 보게 되면 금방 빠져들게 된다. 대중성과 예술성의 경계에 놓인 그의 작품은 창작산실이 있어 빛을 볼 수 있었다. 김재훈은 “이렇게 지원받는 기회가 아니면 대중적인 공연으로 갈 수밖에 없다”면서 “해외에 나가 연주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도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문화의 변화다. 김재훈은 “우리나라는 콩쿠르에 너무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은 이미 1980년대에 다 끝냈다”면서 “승자에게만 박수 보내는 음악이 아니라 같이 즐기고 연주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음악을 보여 주면서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류재민 기자
2023-01-0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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