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주스의 비밀】 앨리사 해밀턴 지음 신승미 옮김
오렌지를 보면 입에 침이 괸다. 조건반사다.비슷한 이치로, 오렌지 주스를 떠올릴 때면 물방울 송글송글 맺힌,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노란색 액체가 눈앞에 떠다닌다. TV광고 등을 통해 거의 조건반사에 이를 정도로 ‘학습’됐기 때문이다.
오렌지 주스는 오렌지 원형에 가까운 음료라고, 그러니 아무 의심하지 말고 ‘신선한’ 비타민C를 마시라고 말이다.
과연 그럴까. 오렌지 주스는 정말 그렇게 신선하고 순수한 먹거리일까. 업체들이 광고하는 ‘순수한’(pure), 혹은 ‘100%’ 오렌지 주스 뒤에 흰색 가운을 입은 수많은 연구진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오렌지 주스의 비밀’(앨리사 해밀턴 지음, 신승미 옮김)은 바로 이 오렌지 주스의 이면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춰낸다.
저자가 오렌지 주스를 바라보는 관점은 하나로 모아진다. “유명 음료업체들의 오렌지 주스에서 연상되는 싱그러움과 상큼함이 실은 신중하게 제작된 기만적인 광고로 인해 조작된 이미지”이며 “주부가 시장에서 산 오렌지를 직접 짠 것 외에 ‘순수’하거나 ‘100%’인 오렌지 주스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각종 상품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사는 우리가 광고 이미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먹거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의 건강, 더 나아가 생존에까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오렌지 주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1961년 벌어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오렌지 주스 정체성 표준 개발 공청회’에 주목해야 한다.
이때 마련된 기준이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청회 동안 정부와 업계 등은 ‘오렌지 주스 제품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구성요소, 공정, 첨가물은 무엇인가.’ 등에 초점을 맞춰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1963년이 되어서야 FDA는 36건에 달하는 ‘결론’들을 도출해 냈다.
그러나 저자는 이 결론들이 업계의 이기적인 주장들을 막지는 못했고, 그로 인해 오렌지 외의 성분이 분명 들어가 있는데도 ‘100% 오렌지 주스’라고 당당히 표기할 수 있게 됐다고 판단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오렌지 주스의 역사’는 결국 ‘오렌지 주스 마케팅의 성공사(史)’였던 셈이다.
책은 또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NFC’(비농축과즙) 오렌지 주스의 진실, 음료업체 양대 산맥인 코카콜라와 펩시가 자회사를 내세워 벌이는 ‘오렌지 전쟁’ 등도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1만 38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2010-09-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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