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세상을 들이켜다】【인생, 이 맛이다】
술의 신 바커스(디오니소스)가 일찌감치 우리 민족을 알았다면, 올림푸스 산에 살지 않고 백두산이나 금강산으로 이민 왔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술을 즐기는 것과 관련해서 세계 톱클래스를 다투고 있는 민족이다.그렇다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술은 무엇일까.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2009년 국내 19세 이상 성인 한 명당 마신 맥주는 500㎜ 105병, 소주는 360㎜ 68병, 막걸리는 750㎜ 9병이었다.
그런데 가장 즐겨 마시는 맥주에 대해 의외로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 맥주의 어제와 오늘의 매력에 흠뻑 빠져 볼 수 있는 책이 잇따라 나와 눈길을 끈다.
국내에서 맥줏집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호프(Hof)는 독일어로 광장이라는 의미다. 맥주 자체에 공동체적인 속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야콥 블루메 지음, 김희상 옮김, 따비 펴냄)는 맥주를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기원 전 4000년 수메르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맥주는 공동체 결속을 다지는 술로 중세 시대에 꽃을 활짝 피웠다. 무리를 지어 술집을 찾은 손님들은 선창자의 구호에 따라 동시에 잔을 비워야 했다. 취하기 전에 자리를 뜨는 것은 공동체를 모욕하는 행동이었다. 근대 노동자 계급의 출현과 함께 맥주는 누구나 즐기는 술이 됐고, 맥줏집은 현대 정치의 중심이 됐다. 히틀러가 첫 정치연설을 한 곳도 맥주집이었다. 1만 8000원.
프랑스 영화평론가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광의 3단계를 ‘한 영화를 두 번 이상 본다,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토론한다, 직접 영화를 만든다.’로 이야기한다. 고나무 한겨레신문 기자는 맥주광의 3단계를 ‘맥주가 맛있는 호프집이나 외국 맥주를 싸게 마실 수 있는 퍼브를 발굴한다, 자신이 마신 맥주 맛에 대해 블로그나 인터넷에서 품평하고 논쟁한다, 그러다가 직접 빚는다.’라고 말한다.
그가 지은 ‘인생, 이 맛이다’(해냄출판사 펴냄)에서는 맥주광의 꿈, 직접 맥주를 빚는 과정이 생생하게 꿈틀거린다. 저자는 개성이 없는 국내 맥주를 견디다 못해 맥주 양조 키트를 사 직접 맥주를 빚기 시작한다. 맥아 공장과, 하우스 맥주를 빚는 맥줏집을 찾아가 양조 과정을 직접 맞닥뜨리는 과정은 브루마스터(양조전문가)를 꿈 꾸는 사람이라면 눈여겨 볼 만하다. 1만 28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10-09-11 1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