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승자와 패자 결정될 수 있을까”

“20대에 승자와 패자 결정될 수 있을까”

입력 2011-07-09 00:00
수정 2011-07-0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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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상 ‘철수 사용 설명서’ 저자 전석순

덥수룩한 머리에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았다. 윗도리는 헐렁한 면티, 바지는 추리닝, 신발은 ‘쓰레빠’(슬리퍼)를 걸친 남자가 ‘썩소’(썩은 미소)를 날리고 있다. 흰색 면티 가슴팍에 새겨진 알파벳은 C. 제35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의 주인공으로 책 표지에 새겨진 캐릭터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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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오된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로 독자들에게 ‘친근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 전석순씨.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낙오된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로 독자들에게 ‘친근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 전석순씨.
손형준기자 boltagoo@seoul.co.kr




8일 서울신문사 편집국에서 만난 ‘철수 사용 설명서’의 저자 전석순(28)씨는 “내세울 건 없지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은 철수 캐릭터에 내 모습이 절반 정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루저(loser) 문학의 최고 극단” “좋은 소설은 익숙한 소재를 새로운 형식으로 전달할 때 나온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다.”는 등의 심사평을 받은 ‘철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이나 연애 등, 뭐든 제대로 안 되는 29세 백수, 철수의 이야기다.

‘루저 문학’은 고시원에 살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의 정서를 담은 문학을 가리킨다. 음악으로는 ‘싸구려 커피’를 부른 ‘장기하와 얼굴들’이 패배자의 문화를 담아냈다고 평가된다. 소설로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부터 시작해서 오쿠다 히데오의 ‘스무살, 도쿄’, 88만원 세대를 적나라하게 그린 임정연의 ‘스끼다시 내 인생’,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등이 루저 문화를 다루었다. ‘루저 문학’이 문학적으로 정립된 개념은 아니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와 문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틀’이다.

‘철수’는 “철수를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사용 설명서를 읽고 상황에 맞게 정확히 사용해 주십시오.”란 사용 설명서로 시작되는 특이한 형식의 소설이다. 작가는 “자기 자신을 물건 취급하는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과, 사용 설명서를 통해 인물을 깊이 있게 알게 되면서 생기는 따뜻한 위로의 시선을 함께 그리고자 했다.”며 사용 설명서 형식으로 소설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

그동안 이메일이나 편지 또는 대화를 그대로 옮겨 적는 등 특이한 형식의 소설은 있었지만 사용 설명서는 처음이다. “소설의 형식이 먼저 눈에 띄면 위험요소가 많다. 다행히 내용과 형식이 맞아떨어져 나만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는 게 저자의 이야기다.

철수는 키 173㎝, 몸무게 65㎏의 평범한 남성이지만 사람의 피부와 접촉하거나 특히 여자친구와 있을 때 온몸이 빨개지고 열이 오르는 특이한 증상이 있다. 작가는 “발열 반응이 가전제품의 가장 일반적인 오류 가운데 하나라 주인공 철수의 특이 체질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철수가 여자친구와 섹스 기능을 수행할 때 발열 오류로 작동을 중단하는 장면의 묘사는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기지가 넘친다. 소설 결말 부분에는 여자친구에게도 신체상의 오류가 나타난다.

전씨는 “열은 아이들이 세균과 싸울 때도 나타나는 증상이다. 철수가 발열하는 것은 성능 오류일 수도 있지만 성장의 의미도 있다.”고 강조했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명지대 문학창작과를 졸업한 전씨는 대학 1학년 때 기차를 타고 통학하며 주로 문학 작품을 읽었다고 한다. 작업실도 춘천에 마련했다. 최근 신작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를 낸 작가 박범신씨가 그의 스승이다. 대학 정년을 맞은 박씨의 제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등단한 이가 전씨다.

자신의 작품이 ‘루저 문학’으로 규정되는 것에 대해 전씨는 “과연 20대에 승자와 패자가 결정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소설을 읽고 루저의 개념에 대해 의문을 품었으면, 그리고 살면서 과연 루저가 있을 수 있는지 의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가진 소박한 바람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속품으로도 살기가 버거워 오늘도 헤매는 불안한 20대에게 신예 작가가 ‘철수 사용 설명서’란 꽤 괜찮은 매뉴얼(설명서) 하나를 내놓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11-07-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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