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속살을 보다

아프리카의 속살을 보다

입력 2011-10-08 00:00
수정 2011-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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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방랑】 폴 서루 지음 작가정신 펴냄

두툼하다. 쇠고기 패티를 두 장 얹고, 그 위에 야채와 베이컨 등을 듬뿍 올린 햄버거와 닮았다. 세계 3대 여행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미국의 폴 서루가 지은 ‘아프리카 방랑’(강주헌 옮김, 작가정신 펴냄)이다.

●수단·케냐 등 종단 과정 생생히

책엔 그 흔한 아프리카 야생 동물 사진 한 장 없다. 숨이 턱턱 막히는 외모의 책은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슬그머니 아프리카의 한 곳으로 독자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곳엔 고유한 속도, 고유한 방식으로 흘러가는 아프리카의 시간이 있다.

책은 서루가 2000년대 초반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경험한 모든 것을 녹여낸 여행기다. 800쪽에 달하는 분량에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 동쪽을 종단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았다.

아프리카의 북쪽 끝 카이로에서 남쪽 끝 케이프타운까지 종단하는 여정에서 서루는 종종 곤경에 빠진다. 지독한 열기와 열악한 도로사정은 기본이다. 교통수단은 대개 더럽고 불편하며, 먹거리는 변변찮은 데다, 종종 배탈이 동반된다. 고물 기차와 닭장 버스, 가축용 트럭, 통나무배를 타고 무장 강도의 총격을 받는 아찔한 순간도 넘겨야 한다.

하지만 위험과 우연은 여행자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이 되기도 한다. 자동차를 수리하러 들른 마을에서 푸짐한 만찬을 차려 때아닌 축제를 벌이고, 엉겁결에 공짜로 얻어 탄 화물선에서 따뜻한 환대도 받는다.

저자가 사막에서 야영을 하며 “바람과 모래 폭풍, 소나기에 익숙해지면서 사막 생활에 점점 재미를 붙여가고”, 힘겹게 노를 저어 국경을 건너면서 “텅 빈 강을 항해하는 즐거움은 허클베리 핀을 꿈꾸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순수한 즐거움”이라고 적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阿 내부서 서방 조망… 시각 차별화

책은 아프리카의 정치와 사회상도 깊이 있게 전하고 있다. 여행지에 대한 낭만과 환상으로 점철된 여느 여행서와 차별화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종신 지도자를 자처하는 정치꾼들, 낙후된 사회 시스템, 미화된 선교단체나 구호단체의 활동 등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중엔 부끄럽게도 거래가 금지된 코끼리 상아를 사려는 한국의 대사관 직원도 포함돼 있었다.

아프리카는 흔히 외부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그네들만의 시·공간이 엄연한데도 줄곧 외부의 것으로 참견하려 든다. 저자의 말을 꼽씹어 봐야 할 이유다.

“외부인들은 아프리카를 지연되는 대륙-지지부진한 경제, 헛다리를 짚는 사회, 마냥 유보되는 정치와 인권, 제자리에 멈춰버린 공동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아프리카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구 세계의 속도는 비정상이고, 현대 테크놀로지가 속도로 이루어 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는 나름의 이유에서 고유한 속도로 고유한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으니 피난처이고 휴식처이며 달아나야 할 마지막 땅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2만 8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2011-10-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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