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찾아 여행 간다? 아무데도 안 가는 게 진짜 자유!

자유 찾아 여행 간다? 아무데도 안 가는 게 진짜 자유!

정서린 기자
정서린 기자
입력 2017-03-10 22:30
업데이트 2017-03-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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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지 않을 자유/피코 아이어 지음/이경아 옮김/문학동네/116쪽/1만 2800원
‘여기’를 떠나는 게 미덕이 된 시대다. 여행만이 구원이자 치유라고 믿는 현대인들에게 돌연 낯선 화두가 앞에 놓였다. ‘여행하지 않을 자유’야말로 삶의 무력과 공허를 이길 답이라는 이야기. 이 세계 어디든 가 닿아야 의미가 있다고 배워 온 우리에겐 왠지 반발하고 싶은 화제다.

더욱이 저자는 ‘아무 데도 가지 않기’라는 말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아홉 살 때부터 대륙을 횡단하고 어딘가로 가는 기쁨을 한껏 누리기 위해 여행작가가 됐다. 스물아홉에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사무실을 두고 세계의 온갖 사건에 대해 ‘타임’에 기고한 피코 아이어. 평생 여행자로 살아온 그가 왜 ‘아무 데도 가지 않을 자유’를 설파하려는 걸까.

‘사방을 종종거리고 다니며 만족을 찾는 것 자체가, 내가 절대 안정이나 만족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 같았다’는 게 이유다. 때문에 그는 1년간 일본 교토 뒷골목의 단칸방에 조용히 스며든다. 그곳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경이로운 풍경을 합친 만큼의 광활한 풍경과 조우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무 데도 가지 않는 행위는 세상을 향한 등 돌리기가 아니란 것을. 오히려 세상을 좀더 명료하게 바라보고 깊이 사랑하려는 행위라는 것을.

이야기를 미국 캘리포니아 샌게이브리얼 산맥 깊은 곳에서 여는 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다. 뮤지션이자 시인, 소설가인 레너드 코언이 지내는 외진 오두막을 찾는 장면이다. 부와 명성을 한껏 누려야 마땅한 그는 그곳에서 다 해진 승복을 입고 저자를 맞이한다. “적막 속에서의 좌선이 지구에서 61년 살며 알아낸 가장 심오한 즐거움이자 진짜 축제”라고 감탄하는 레너드 코언은 “아무 데도 가지 않기야말로 바깥의 모든 장소를 이해할 수 있는 원대한 모험”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레너드 코언, 마르셀 프루스트, 에밀리 디킨스 등은 그에게 “아무 데도 가지 않기란, 세상의 소음과 단절하고 타인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시간과 에너지를 찾아내는 한 가지 길”임을 일러준다.

우리는 과잉 연결에 짓눌려 있다. 밤낮 없이 끼어드는 스마트폰은 원치 않는 정보로 일상을 뒤덮고 세상의 속도는 따라잡기 어렵다. 사람들과 연결된 통로는 더 많아졌지만 고립감은 더 깊어간다. 아무도 모르는 선방에 찾아드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 하루 한 시간이라도 휴대전화 끄기, 퇴근 뒤 이메일 열어보지 않기만 실천해 봐도 변화는 일어난다. 일상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을 작은 자유를 당신에게 건네주시라.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2017-03-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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