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들이 잇따라 신작을 내놨다. 짧은 소설부터 추리를 가미한 역사소설까지 작가들이 빚어낸 삶에 대한 웅숭깊은 통찰과 재기발랄해진 시선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지루한 장마철, 한 권의 소설을 읽으면서 꿉꿉한 기분을 날려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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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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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실’, ‘논개’ 등 역사소설을 써 온 소설가 김별아의 신작 ‘구월의 살인’(해냄)이 우선 눈길을 끈다. 작가는 “정보를 처음부터 던져 놓지 않고 최대한 뒤로 끌고 가서 독자들과 ‘밀당’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처음으로 추리 기법을 시도했다. 이야기는 조선 효종 즉위년(1649)에 도성 한복판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범인인 ‘구월’이라는 여성의 복수와 이를 둘러싼 진실을 좇는다. 조선왕조실록에 ‘삼성국문(三省鞠問)을 받던 범인이 옥중에서 물고 당했다’고 짤막하게 언급돼 있는 사건에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조선의 뒷골목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인간 존재와 삶의 이면에 담긴 다양한 층위를 엿보고 싶다면 소설집을 들여다보자. 길이는 짧아도 글이 전하는 울림은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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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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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작가는 소설집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문학과지성사)에 실린 8편의 단편을 통해 몰랐던 사람끼리 서로를 알아 가고 이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표제작은 서른일곱 살 남자 ‘인수’가 아버지와 가사도우미 ‘경아’와 함께 지내며 관계의 벽을 허물고 진짜 가족이 돼 가는 이야기다. 얼떨결에 광장의 집회 인파에 섞이게 된 청년 ‘훈’의 이야기를 담은 ‘11월 30일’, 한 남자가 아내를 떠나면서 이해를 구하는 이야기를 편지글로 담은 ‘오랜 이별을 생각함’ 등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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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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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작가는 소설집 ‘단 하루의 영원한 밤’(문학동네)에서 고요하고 잠잠한 일상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뜻밖의 순간들을 포착해 냈다. 노년 여성과 중년 남성의 숨겨진 내면을 정교하게 그려낸 ‘델마와 루이스’와 ‘빈집’이 대표적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페미니즘 로드무비의 통쾌함과 뜻밖의 스릴러적 긴장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최근 김인숙 소설의 특별한 변화”라고 했듯이 작가의 새로운 색채가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동명의 영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델마와 루이스’는 가출한 80대 두 자매가 바다로 향하는 여정을 그렸다. 삶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모험과 일탈을 감행하는 두 여성의 이야기가 유쾌하면서도 뭉클하게 다가온다.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빈집’은 27년간 함께 살았지만 늘 남편을 못마땅해하는 여자가 남편을 경멸하면서도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을 담았다. 결말에서 드러나는 남편의 충격적인 비밀에 의해 일상이 유지되는 삶의 역설을 심층적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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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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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 속에서 명징한 깨우침을 얻고 싶은 독자라면 이승우 작가의 ‘만든 눈물 참은 눈물’(마음산책)이 좋겠다. 작가는 27편의 짧은 소설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집을 지으려다 가장 화려한 무덤을 갖게 되는 이, 슬픔에 중독돼 더이상 슬픔을 떠날 수 없는 이 등 이해 불가한 인간의 모순적인 모습을 짚었다. 책 중간중간에 실린 서재민 화가의 다채로운 그림도 소설의 한 장면인 듯 강렬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