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가로질러/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전대호 옮김/해나무/352쪽/1만 6000원
“나 태어난 곳 그대 어둠이여. 그댈 불빛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대 어둠이여’라는 시로 밤을 예찬한다. “불빛은 세계의 경계를 그어버리지만, 어둠은 모든 것을 품 안에 품는다”고 한 그는 어둠이 오히려 세계의 본질을 알려준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밤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릴케는 어둠을 품은 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 해답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밤. 낮의 반대말, 잠을 통한 휴식의 기간, 기이한 꿈이 펼쳐지는 때,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시간. 그러나 누군가에겐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독일 과학사 학자인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신간 ´밤을 가로질러´는 밤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때로는 과학, 때로는 문학, 때로는 철학으로 들여다본, 그야말로 밤에 관한 ‘종합판’인 셈이다.
저자는 밤의 여러 모습을 다양하게 살피고자 어둠, 그림자, 우주, 잠, 꿈, 사랑, 욕망, 악을 소재로 삼는다. 밤이란 무엇인가, 우주는 왜 검은가, 우리는 왜 잠을 자는가, 꿈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악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밤을 둘러싼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하나씩 답한다.
인간의 역사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인류가 밤을 밝힌 것은 불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어둠을 밝히면서 인류의 뇌는 비약적으로 발달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물, 흙, 공기와 불을 4가지 원소로 꼽았지만, 인류가 불의 정체와 원천을 알기까지는 그 뒤로 2000년이나 걸렸다. 빛이 없는 이 기간에 밤은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중세 사람들은 밤과 어둠을 인간이 저지른 큰 잘못의 결과로 해석하고, 밤이 오면 밤바람 속의 정령들과 더불어 인간의 내면에서 어두운 욕망이 고개를 든다고 상상했다. 예컨대 16세기 영국 작가 토머스 내시는 ‘밤의 공포’라는 책에서 ‘밤을 절망의 어머니, 지옥의 딸’로 묘사했다.
밤을 논할 때 잠과 꿈을 떼 놓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인공조명이 없던 과거에는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한밤에 깨어 두세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잠을 자는 ‘2단계 수면 패턴’이 보편적이었다. 잠의 패턴이 바뀌었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꿈을 꾼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꿈은 활동하는 뉴런들의 마구잡이 조합에서 발생한다. 잠을 자면 자극성 신호를 가지런히 모으는 모노아민성 시스템과 연결망을 어지럽히는 콜린성 시스템이 함께 작동한다. 이렇게 해서 꾸는 꿈을 프로이트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은폐된 의미’로 파악했다. 은밀한 공포, 바람, 희망이 상징으로 포장됐다는 뜻이다.
과학사에서 봤을 때, 꿈에 의해 창조적인 영감을 얻는 과학자들이 많았다. 예컨대 아우구스트 케쿨레는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벤젠의 구조에 관한 힌트를 꿈에서 얻는다. 벽난로 앞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케쿨레는 뱀 한 마리가 꼬리를 물고 비웃듯 맴도는 꿈을 꾸고 이른바 밴젠 고리 구조를 발견한다. 이 발견 덕분에 19세기 화학공업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를 가리켜 “밤 과학 없이는 위대한 과학이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주제는 ‘인간 속의 악’이다. 인간은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과거 세계대전 등에서 드러난 인간의 무자비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도덕의 원천에 관해 ‘개별 인간의 특수성에 대한 감각지각’이라 설명한다. 앞에 놓인 이가 친구냐 적이냐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도덕의 이중성을 명민하게 파헤친다.
저자는 밤을 종횡무진하면서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은 밤의 어둠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빛이 존재하려면 어둠이 있어야 하고, 인간은 낮과 밤, 모두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삶은 밤을 통해 가치를 얻는다”는 게 그의 마지막 결론이다. 저자는 문학, 과학, 역사, 철학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고 유려한 글솜씨를 선보인다. 다만, 너무나 방대한 범위를 다루는 데다가 온갖 지식을 쏟아내기 때문에 자칫하면 저자의 안내를 놓치고 어둠 속에 남겨질 수 있음을 유의하시길.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밤은 화가들에게 좋은 그림 소재였다. 잠, 꿈, 악마를 그린 명화들. 프레데릭 레이턴 ‘타오르는 6월’.
밤은 화가들에게 좋은 그림 소재였다. 잠, 꿈, 악마를 그린 명화들. 아리 세페르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밤은 화가들에게 좋은 그림 소재였다. 잠, 꿈, 악마를 그린 명화들.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밤은 화가들에게 좋은 그림 소재였다. 잠, 꿈, 악마를 그린 명화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대 어둠이여’라는 시로 밤을 예찬한다. “불빛은 세계의 경계를 그어버리지만, 어둠은 모든 것을 품 안에 품는다”고 한 그는 어둠이 오히려 세계의 본질을 알려준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밤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릴케는 어둠을 품은 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 해답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밤. 낮의 반대말, 잠을 통한 휴식의 기간, 기이한 꿈이 펼쳐지는 때,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시간. 그러나 누군가에겐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독일 과학사 학자인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신간 ´밤을 가로질러´는 밤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때로는 과학, 때로는 문학, 때로는 철학으로 들여다본, 그야말로 밤에 관한 ‘종합판’인 셈이다.
저자는 밤의 여러 모습을 다양하게 살피고자 어둠, 그림자, 우주, 잠, 꿈, 사랑, 욕망, 악을 소재로 삼는다. 밤이란 무엇인가, 우주는 왜 검은가, 우리는 왜 잠을 자는가, 꿈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악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밤을 둘러싼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하나씩 답한다.
밤을 논할 때 잠과 꿈을 떼 놓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인공조명이 없던 과거에는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한밤에 깨어 두세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잠을 자는 ‘2단계 수면 패턴’이 보편적이었다. 잠의 패턴이 바뀌었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꿈을 꾼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꿈은 활동하는 뉴런들의 마구잡이 조합에서 발생한다. 잠을 자면 자극성 신호를 가지런히 모으는 모노아민성 시스템과 연결망을 어지럽히는 콜린성 시스템이 함께 작동한다. 이렇게 해서 꾸는 꿈을 프로이트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은폐된 의미’로 파악했다. 은밀한 공포, 바람, 희망이 상징으로 포장됐다는 뜻이다.
과학사에서 봤을 때, 꿈에 의해 창조적인 영감을 얻는 과학자들이 많았다. 예컨대 아우구스트 케쿨레는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벤젠의 구조에 관한 힌트를 꿈에서 얻는다. 벽난로 앞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케쿨레는 뱀 한 마리가 꼬리를 물고 비웃듯 맴도는 꿈을 꾸고 이른바 밴젠 고리 구조를 발견한다. 이 발견 덕분에 19세기 화학공업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를 가리켜 “밤 과학 없이는 위대한 과학이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주제는 ‘인간 속의 악’이다. 인간은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과거 세계대전 등에서 드러난 인간의 무자비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도덕의 원천에 관해 ‘개별 인간의 특수성에 대한 감각지각’이라 설명한다. 앞에 놓인 이가 친구냐 적이냐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도덕의 이중성을 명민하게 파헤친다.
저자는 밤을 종횡무진하면서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은 밤의 어둠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빛이 존재하려면 어둠이 있어야 하고, 인간은 낮과 밤, 모두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삶은 밤을 통해 가치를 얻는다”는 게 그의 마지막 결론이다. 저자는 문학, 과학, 역사, 철학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고 유려한 글솜씨를 선보인다. 다만, 너무나 방대한 범위를 다루는 데다가 온갖 지식을 쏟아내기 때문에 자칫하면 저자의 안내를 놓치고 어둠 속에 남겨질 수 있음을 유의하시길.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8-09-28 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