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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죽음… 인간 날것의 감정 파헤친 에르노의 자전 기록

性·죽음… 인간 날것의 감정 파헤친 에르노의 자전 기록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22-03-24 17:10
업데이트 2022-03-25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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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아니 에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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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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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노바 호텔

아니 에르노 지음/정혜용 옮김
문학동네/136쪽/1만 3500원

‘나’는 1980년대 영수증 더미에서 발견한 P의 편지를 보고 어머니가 정신질환으로 입원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아주 오래전 홀로 죽음에 다가가는 어머니를 잊으려고 나는 P와 카사노바 호텔에서 성관계를 맺었다. 그 후 우연히 머리가 하얗게 센 P를 보게 되니 육체적 사랑의 ‘가없음’과 ‘불가해함’을 느낀다.

프랑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이자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아니 에르노(82)가 2020년 출간한 선집 ‘카사노바 호텔’은 이처럼 그의 작품 세계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다채로운 에세이와 소설 12편으로 구성됐다.

이 책은 프랑스 문학 거장들의 작품을 묶어 내놓은 갈리마르 총서에 포함된 ‘삶을 쓰다’(2011) 중에서 작가의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 정수를 추렸다.

에르노는 생존 작가로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작품이 실린 인물이기도 하다.

작가는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소신대로 인간의 욕망과 날것의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자전적 에세이이자 표제작인 ‘카사노바 호텔’(1998)은 앞에서처럼 평생에 걸쳐 천착한 에로스(성적 욕망)와 타나토스(죽음의 본능)를 다뤘다.

‘슬픔’(2002)에서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죽음에 경의를 표했고, 단편소설 ‘축하연’(2006)에서는 결혼을 앞둔 커플과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결혼 축하연이 상징하는 환한 빛과 그 이면의 쓸쓸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금세기 저편에서’(1999)는 21세기를 앞두고 20세기의 정서, 인물과 사건이 잊혀질 것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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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문학과 정치’(1989)에서 “문학이 방식은 달라도 정치 행위와 마찬가지로 사회 변화를 촉발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54쪽)고 밝힌 것은 문학은 현실과 맞닿아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견해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정치적 저항과 사랑의 열정을 강조한 작가답게 일상의 사소하고 평범한 고통과 갈등 속에서도 거침없이 파고드는 언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독자는 에르노 입문서와도 같은 이 책을 통해 작가 개인의 사건과 상상력이 한 세대의 집단 기억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문학동네는 표제작 ‘카사노바 호텔’과 궤를 같이하는 작가의 대표 소설 ‘탐닉’(왼쪽)과 ‘집착’(오른쪽)의 개정판도 같이 펴냈다. 각각 중독과 같은 사랑과 기다림, 질투에 점령당한 여자의 모놀로그를 그린 책들로 함께 읽으면 에르노의 작품 세계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하종훈 기자
2022-03-2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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