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킴 투이 지음/윤진 옮김/문학과지성사/177쪽/1만 6000원
베트남 중부의 한 마을에서 맹인으로 태어난 7살 소녀(오른쪽 첫 번째).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로 인해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 1078명 중 272명이 장애를 안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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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투이
1966년 베트남 바오짜이 마을에서 여성과 어린 아이들이 진흙탕 속에서 웅크린 채 공습을 피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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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4월 29일 사이공 건물 꼭대기에 자리잡은 에어 아메리카 헬리콥터에 피란민들이 줄을 지어 탑승하고 있다. 소설 ‘앰’은 1960년대 이후 베트남 현대사를 단단하게 직조한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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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단단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저자 특유의 문체 덕이다. 앞선 소설들과 달리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등장인물 대사 없이 저자의 서술로만 이야기를 끌어간다. “지난밤 떰은 어린아이로 잠들었다. 이튿날 깨어났을 땐 가족을 다 잃었다. (중략) 단 네 시간 만에, 늘 길게 땋아 늘어뜨렸던 어린 소녀의 머리카락이 가죽이 벗겨진 머리들 앞에서 헝클어졌다.”(47쪽) 이처럼 구체적인 묘사 없이도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리게 한다.
“무지개는 희망, 기쁨, 완전함을 나타낸다. 그런데 미군이 베트남 땅에 쏟아부은 제초제들의 이름 역시 무지개(rainbow)였다. 어릴 때 떰은 무더운 건기와 몬순의 우기 사이에 난데없이 가을이 생겨나기라도 한 듯 농장의 나무들에서 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바로 그 무지개 때문에 암에 걸렸다.”(156쪽) 구구절절할 수 있는 묘사를 작가는 압축해 전한다. 그 문장 속에 날카로운 칼, 때로는 아름다운 꽃을 숨겨 놓는다. 소설이라기보다 서사시를 읽는 듯하다. 캐나다 총독문학상, 프랑스 에르테엘-리르 대상 수상, 그리고 대안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뉴 아카데미 문학상 최종 후보에 오른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문학은 때론 역사적 사실보다 더 강렬하고, 저자의 소설은 ‘문학의 힘은 이런 것’이라 당당하게 증명한다.
2022-12-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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