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시름, 강진서 푸소

일상의 시름, 강진서 푸소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22-11-23 17:40
업데이트 2022-11-24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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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어난 풍경과 정겨운 체험 품은 ‘만추의 강진’

남도 사람들이 시름 따위를 덜어 낸다는 의미로 쓰는 단어가 있다. ‘풀다’이다. 여기에 권유형 어미 ‘~시오’를 붙이면 ‘푸소’가 된다. 현지 사투리에 가깝게 표현하면 아마 ‘푸씨오’가 더 정확할 것이다. 남도에서 ‘~시오’는 하대의 표현이 아니다. 상대를 높이는 말, 경어다. 그러니까 ‘푸소’는 일상의 시름을 날리시라는 남도 사람들의 은근한 권유가 담긴 표현인 거다. 전남 강진에서 밀고 있는 농촌 체험프로그램의 이름 역시 ‘푸소’(FU-SO)다. 외갓집 같은 농가에 머물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라는 바람을 담았다. 만추의 강진을 다녀왔다. 윤슬 반짝이는 구강포 일대는 녹의홍상을 걸쳐 입은 듯하고 월출산 아래 백운동 정원, ‘남도의 소금강’ 석문공원 등엔 차분하게 가을이 내려앉았다. 여기에 ‘푸소’를 더하니 만추의 서정은 한결 짙어졌다.
전남 강진의 강진만 생태공원에 새벽 햇살이 깃들고 있다. 생태공원이 자리한 구강포 일대는 윤슬 쏟아지는 한낮에도, 땅거미 지는 저물녘에도 빼어난 풍경을 선사한다.
전남 강진의 강진만 생태공원에 새벽 햇살이 깃들고 있다. 생태공원이 자리한 구강포 일대는 윤슬 쏟아지는 한낮에도, 땅거미 지는 저물녘에도 빼어난 풍경을 선사한다.
구강포(九江浦)는 탐진강 등 아홉 물길이 모이는 포구란 뜻이다. 뭍을 돌아온 강물은 구강포에서 강진만의 짠물과 몸을 섞는다. 강진을 풍요롭게 하는 축복의 땅은 이 과정을 거쳐 형성된다. 강진은 ‘달이 뜨는 산’ 월출산의 품에 안긴 마을이다. 한데 실제 달은 구강포 쪽에서 뜬다. 해가 뜨는 곳도 구강포다. 바꿔 말해 이 일대의 해돋이, 해넘이, 달맞이 풍경이 빼어나다는 뜻이다. 한낮엔 바다 위로 윤슬이 쏟아진다. 언제 가도 실패 없을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갈대군락이 반기는 강진만 생태공원

구강포 일대에 강진만 생태공원이 조성돼 있다. 강진의 갯벌을 가까이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갈대 군락지가 약 66만㎡(20만평)에 걸쳐 펼쳐져 있고, 청정 갯벌엔 짱뚱어 등 1100여종의 생명체가 살아간다. 이맘때는 큰고니 등 수많은 겨울 철새의 군무와 마주할 수도 있다. 갈대군락 사이로는 약 4㎞의 데크 길이 놓여 있다. 수많은 갯벌 생명과 더불어 산책을 즐기는 맛이 각별하다. 시간만 잘 맞추면 인생 사진도 한 장 노려볼 만하다. 자전거도 대여해 준다. 남포축구장에서 강진만 생태공원, 제방 자전거도로, 철새도래지까지 다녀오는 9.2㎞짜리 자전거 코스가 조성돼 있다. 1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다.
가우도 모노레일.
가우도 모노레일.
가우도는 ‘강진의 여의도’라고 불리는 섬이다. 두 개의 연륙교를 통해 각각 도암면, 대구면 방향으로 연결돼 있다. 다리가 놓인 이후 가우도는 강진의 랜드마크가 됐다. ‘강진 답사 1번지’라 할 만큼 대부분의 여행객이 빠짐없이 찾는다. 놀거리도 많아졌다. 섬의 가장 높은 곳엔 모노레일이 놓였다. 5분이면 정상의 청자타워까지 오를 수 있다. 모노레일은 2대가 운행 중이며, 한 번에 30명 정도 탈 수 있다. 속도가 빠르지 않아 풍경을 즐기며 오를 수 있다.

청자타워와 대구면 사이엔 짚트랙이 조성됐다. 거리는 1㎞ 정도다. 빠르게 바다 위를 질주해 내려가는 쾌감이 짜릿하다. 짚트랙을 타진 않더라도 청자타워 전망대는 오르는 게 좋다. 두륜산, 덕룡산 등 주변 산들이 바다 위로 병풍처럼 펼쳐진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짚트랙·모노레일 등 놀거리 풍성

청자타워에서 청자쉼터 쪽으로 출렁다리도 놓였다. 바닥엔 격자무늬로 구멍이 숭숭 뚫렸다. 바다에 닿을 듯 축 늘어진 다리를 걸으며 짜릿한 스릴을 맛볼 수 있다. 시속 70㎞로 달리는 제트 보트도 운행 중이다. 야경도 멋지다. 가우도 둘레길과 소공원 등에 야관 경관 조명이 설치됐다. 반딧불, 꽃 등 다양한 형태의 조명이 섬을 밝힌다.
월출산 아래 펼쳐진 차밭.
월출산 아래 펼쳐진 차밭.
강진에는 ‘월’(月) 자 이름의 동네가 많다. 월출산이 품은 지역이라 그렇다. 월출산 아래 마을은 ‘월하’, 남쪽 자락은 ‘월남’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월출산 아래 2차선 도로변에는 드넓게 차밭이 펼쳐져 있다. 사위가 무채색으로 변해 가는 이맘때에 차밭의 푸름을 만난다는 건 뜻밖의 횡재다.

차밭 아래로는 백운동 별서정원이 있다. 조선 중기 때 이담로라는 이가 조성한 원림이다. 강진으로 유배된 다산 정약용이 1812년 월출산 산행길에 마주했다가 마음을 흠뻑 빼앗겼다는 일화가 전한다. 별서는 밥을 해 먹으며 기거할 수 있는 별장을 뜻한다. 마당에 조성된 유상곡수(流觴曲水·술잔을 띄울 수 있도록 만든 구부러진 물길) 등 우리 전통 원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추의 풍경도 빼어나다. 단풍이 비친 모습이 붉은 구슬 같다는 홍옥폭(紅玉瀑) 등이 묵직한 늦가을 풍경을 펼쳐 낸다.

인근의 월남마을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다는 ‘천년 마을’이다. 주변이 공사 중이라 다소 어수선하긴 해도 월남사 터의 삼층석탑, 한옥마을 등 볼거리가 꽤 있다.
단풍이 물든 석문공원.
단풍이 물든 석문공원.
도암면의 석문공원은 늦가을에 찾아볼 만한 곳이다. 예부터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린 곳인데, 공원을 둘러싼 석문산(272m) 일대의 산세가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듯 수려하다. 특히 만추의 단풍과 어우러진 모습이 일품이다. 만덕산(412m)과 석문산 사이엔 출렁다리가 놓였다. 멀리서 봐야 했던 기암괴석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주차비, 입장료는 없다.

●민박 넘어 농촌 삶 체험하는 ‘푸소’도

이제 ‘푸소’를 말할 차례다. 체류형 농촌 관광프로그램으로 ‘필링 업’(Feeling Up)과 ‘스트레스 오프’(Stress Off)의 머리글자에서 이름을 따왔다. 여기에 ‘덜어 내다’는 의미의 사투리 ‘풀다’를 절묘하게 섞었다. 농가에서 잠만 자는 종전의 민박과 달리 시골집 주인과 숙식을 하며 농촌의 삶을 체험할 수 있다.

2015년 처음 시작한 ‘강진 푸소’는 애초 학생 위주의 체험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참여자의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이젠 일반인에게까지 영역을 넓혔다. 현재 90여 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텃밭 가꾸기와 농작물 수확, 가축 먹이 주기, 어촌·다도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단순 숙박을 넘어 ‘강진에서 일주일 살기’, ‘1박 2일 푸소체험 시티투어’ 등의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갖췄다. 특히 각 농가마다 다르게 차려 내는 남도의 ‘집밥’을 맛볼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여행수첩

-강진만 생태공원을 포함한 구강포 일대는 탐조 명소다. 강둑이 높고 생태탐방로가 철새 서식지와 가까워 큰고니 등 다양한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

다만 조류 전염병이 우려되는 시기인 만큼 철새 서식지를 돌아본 뒤 가금류 등의 축사 방문을 엄금해야 한다.

생태공원 출입구에 마련된 방역 패드에 신발을 꼼꼼하게 닦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푸소 예약은 누리집(www.fuso.kr)에서 받는다. 농가 체험 프로그램을 원하지 않는 여행자들은 민박과 식사(사진)만 선택할 수도 있다.
글·사진 강진 손원천 기자
2022-11-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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