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나를 받아준 히말라야
저 산 넘어 하늘과 맞닿은 곳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히말라야는 아침이면 가장 빨리 해님을 만나고, 저녁이면 가장 늦게까지 햇볕을 받아 빛나는 곳입니다. 아직 해발 800m정도인 이곳에서도 그런 히말라야의 신비한 산마루가 훤하게 보입니다. 자고로 안나푸르나 산군에 들어선 것입니다.오늘 오르는 곳은 강가푸르나의 북면이라 내가 전에 올랐던 남면과는 생김이 달라서 좀 낯설기는 했지만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26년 전 나는 저 위에서 고소와, 자신과 싸웠습니다. 지금은 바람만이 오가는지 구름이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그리움이 있는가?’ 생각보다 담담한 나 자신을 보며 그사이 내가 감정에 무딘 사람이 되었나 싶어 좀 서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 오르기 전 강가푸르나를 만나면 그때 생각이 떠올라 엄청 뭉클할 줄 알았는데….
며칠 전 완전히 끓이지 않은 물을 마신 탓에 속이 좋지 않아서 음식도 조심합니다. 현지 식의 기름기가 많은 반찬과 바람 불면 날아갈 듯한 밥은 아무래도 쉽게 적응하기 쉽지 않아 잘 넘기지 못해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5,416m의 토롱라를 넘을 때까지는 몸에 탈이 나면 안 되겠기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4,080m의 야크카르카라는 동네의 외딴 롯지에 도착했을 때 그곳 사람은 저를 보며 그 겨울 동안 처음 만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갔을 때 비로소 난로에 연통을 달고 불을 피우며 반기기도 했습니다.
산에 들어가면 안 그래도 말이 없는 나는 이번 산행 동안 거의 묵언 수준이 되었습니다. 아들 기범이와 백두대간을 종주할 때도 아들은 저보고 “엄마는 자기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서 물어봐도 대답도 없다”고 많이 삐쳤었습니다. 이런 제가 하물며 외국에서, 그것도 말이 겨우 통하는 어린 현지인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보다는 내 세계가 더 우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을 한 사람씩 불러와서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 아직도 찌꺼기가 남아 있는 대상은 결론이 날 때까지 불러다가 왜 그런지를 분석했습니다. 비교적 잘 지낸 인연들이 많은 듯했고, 행여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대상들에게 깊이 사죄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참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4,080m 야크카르카에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간밤에 심한 바람과 함께 눈이 내렸습니다. 허술한 숙소 문틈으로 눈이 들어와서 침낭 발치까지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지난 저녁에 걱정한 대로 또 눈이 내린 것입니다. 눈이 오면 산을 오를 수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출발을 미루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며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무리하면서까지 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넘고 싶다고, 히말라야와 나와 지난날 하지 못한 화해가 있다고, 이제 화해하고 싶다고….
하이캠프까지만 올라가 보고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때 포기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기도 덕분이라 믿고 싶습니다. 오전 10시 30분을 넘기며 눈이 그치고 바람도 잦아들었습니다. 아무도 밟은 적 없는 히말라야 눈길 위에 내 발자국을 첫 발자국으로 남기며 한 발 한 발 고도를 높입니다.
때로는 길이 얼어붙어 한참을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급경사의 고개에서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힘겨워서 고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만한 고생 없이 그 길을 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해냈습니다. 눈과 바람만 존재하는 그곳, 토롱라!
감사합니다.
다른 생각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감사합니다’라는 한 문장만 내 마음속에 가득했습니다.
나를 도와주는 신에게, 나를 받아준 히말라야에게,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를 도와준 J. P 라이에게, 포기하지 않은 나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감사 여행입니다.
글·사진_ 남난희 《낮은 산이 낮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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