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너를 일으켜 세울거야

음악이 너를 일으켜 세울거야

입력 2011-04-24 00:00
수정 2011-04-2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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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 청소년을 위한 음악교육 재단 설립하는 피아니스트 서혜경

청중을 위해 살았다. 청중을 위해 피나는 연습을 했고, 청중을 위해 그렇게 소중한 내 아이와 함께하지 못했고, 청중을 위해 떠나기 싫어도 세계를 돌며 무대에 섰다. 그런 그가 청중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피아노 앞에 앉은 적이 있다. 유방암 수술 직전이었다.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을지, 아니 수술대에서 살아 내려올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너무나 외롭고 두렵던 그 순간에 혼자 뉴욕 스튜디오에 앉아 그는 리스트의 피아노 콘체르토 ‘위안(Consolation)’ 3번을 연주하며 울었다. 리스트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그 곡을 연주하며 그도 위안을 얻었다. 그 힘으로 피아니스트 서혜경(52세)은 다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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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히 2주에 한 번씩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무대에 서고 음반을 녹음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하지만 연주 목표가 달라졌다. “젊었을 땐 세상 누구보다 내가 피아노를 잘 치고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지치고 힘든 사람들,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의 힘을 주고 삶의 활기를 주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런 음악을 하기 위해 그는 요즘도 하루 평균 6~9시간 피아노를 친다. “요즘 제 연주가 달라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요. 제 음악을 듣고 치유되었다고 하는 분도 계세요.”

‘나’가 아닌 ‘우리’로 눈을 돌리니 다른 세상에 보였다. 요즘 그는 음악이 필요한 곳, 사랑이 필요한 곳이라면 주저 않고 달려간다. 각종 단체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는가 하면, 자선공연에도 열심이다. 재능은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학생 20여 명에게 특별 레슨도 해왔다. “독일연방 청소년 콩쿨에서 우승한 이수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남는 정도가 아니라 3년째 꾸준히 교류하면서 지도하고 있어요.” 지방에서 양말 노점상을 하는 부모님 아래서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온 이수미 씨에게 연습용 피아노가 없다는 얘기를 듣고, 그는 직접 악기회사에 부탁해 그랜드 피아노를 보내기도 했다.

그의 봉사는 어느덧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섰다. 그는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음악교육 봉사를 위해 ‘서혜경예술복지재단’ 설립을 추진 중이다. 재단의 주요 사업은 불우 청소년을 음악교육으로 선도하고, 환경이 어려운 숨은 영재를 발굴해 지원하는 것. “아직 기금 조성이 다 되지 않아서, ‘서혜경예술복지회’라는 이름으로 첫 영재선발 콩쿨을 진행 중이에요.” 마침 인터뷰 날이 서류접수 마감일이었다. “(선발된 아이들은) 무료 지도와 진로 상담을 비롯해서 한 사람의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끝까지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어요. 기금이 모아지면 장학금도 지원할 계획이고요.”

세계적인 연주가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시작하지만, 그의 진정한 목표는 ‘행복한 한 사람’을 만드는 데 있다. “제가 하고 싶은 음악 교육은 베네수엘라의 무료 음악교육 재단 ‘엘 시스테마’처럼 음악을 통해 방황하는 아이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을 자신 있고 즐거운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거예요.” 누구보다 그는 음악이 가진 긍정의 힘을 믿는다. “모두 다 구스타보 두다멜(엘 시스테마 출신의 LA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이 안 되면 어때요? 좋은 음악을 듣다 보면 영혼이 맑아지고, 기뻐지고, 행복해지고…. 다 행복하자고 하는 거거든요.”

무엇보다 지금 행복한 사람은 서혜경 교수 자신일지 모른다. 얼마 전 그는 “최고의 상”을 받았다. 암 수술에 들어가기 전 그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브람스, 멘델스존, 슈베르트의 자장가가 담긴 <밤과 낮> 음반을 녹음했다. “아기 때 요람에 눕혀놓고 들려주던 곡들이에요. 혹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없더라도 들으라고….” 절제수술과 서른세 번의 방사선 치료, 여덟 번의 항암치료를 마치고 딸아이의 열여덟 살 생일에 그는 이 곡을 직접 연주해주었다. 그리고 딸아이가 그때를 생각하며 엄마에 대해 쓴 글이 대학에서 A+를 받았다고 했다. 글 속에 딸은 이렇게 썼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세상 최고의 엄마이자 세상 최고의 피아니스트다.’

서혜경 | 1980년 세계적 권위의 부조니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그것도 최연소로 우승을 거머쥐며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카네기홀이 선정한 3대 피아니스트로 승승장구해왔던 그의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은 2006년 갑작스러운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으면서부터다. 피아노를 포기하라는 권유에도 최소한의 절제수술을 선택하고 힘든 항암치료를 견뎌냈다. 2008년 복귀 연주회에서 그는 국내 최초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 3번을 동시에 연주하며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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