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괴된 사나이’로 돌아온 김명민

영화 ‘파괴된 사나이’로 돌아온 김명민

입력 2010-07-02 00:00
수정 2010-07-0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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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아도 파괴됐을 것”

굳이 이 사람을 또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드라마 ‘하얀 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등 맡는 역할마다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연기파 배우.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연기의 달인’ 혹은 ‘명민좌’라고 부른다. 배우 김명민(38)이다. 그가 최근 영화 ‘파괴된 사나이’로 돌아왔다.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와 함께 영화를 풀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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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카페에서 만난 김명민은 ‘연기파 배우’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정말 감사하지만 칭찬에 자만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수식어들을 인정하면 배우 인생에 독약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추스렸다.  김태웅기자 tuu@seoul.co.kr
서울 광화문 카페에서 만난 김명민은 ‘연기파 배우’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정말 감사하지만 칭찬에 자만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수식어들을 인정하면 배우 인생에 독약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추스렸다.
김태웅기자 tuu@seoul.co.kr
●유괴된 딸 찾는 망가진 목사 역할

영화에서 김명민은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 주영수를 맡았다. 의대생 출신의 목사로 성실히 살아가던 주영수. 하지만 아이가 유괴된 뒤 그의 믿음은 철저하게 ‘파괴돼’ 방탕한 사업가의 길을 걷는다. 아내(박주미)와의 관계도 무너진다. 하지만 8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 유괴범(엄기준)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딸이 살아 있으니 돈을 내놓으라는 것.

“아이의 유괴로 망가져 버린 목사 역할이라…. 너무 역설적인 것 같은데요?”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입을 여는 김명민. “주영수란 캐릭터, 참 솔직해 보였어요. 신이 딸을 버렸다는 배신감에 신을 버렸지만, 딸이 살아 있다는 소식에 그간 억눌렸던 감정이 올라와요. 자기 자신에 대한 상실감과 분노, 회한 같은 거요.”

그래서 물었다. 과연 김명민이 그 입장이라면 어땠을 것 같냐고.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김명민은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고 했다. 하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주영수를 충분히 이해한다고도 했다. “독실한 크리스천도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신을 원망해요. 필요할 때만 신을 찾고 감사하죠. 잠시 떠났다가 돌아오는 경우를 참 많이 봤어요. 절대자가 자신의 딸마저 지켜주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 마냥 경외할 수만 있을까요.”

“독실한 크리스천이니 타락한 연기를 하기 어려웠겠다.”라고 묻자 김명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신은 주영수가 근본적으로 타락한 존재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위기를 겪는 보통 사람들처럼 잠시 신을 떠났을 뿐 영원이 그런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타락이라기보단 타락한 척을 하는 거예요. 스스로에 대한 반항이죠. 진정으로 변했다기보단 변해 보이려 했을 뿐이에요.”

김명민은 이번 영화가 기존 유괴 영화와 선을 긋는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유괴 영화가 부모와 유괴범 간의 두뇌싸움과 그 과정에서 생기는 혈투를 그린 액션 장르가 대부분이지만 ‘파괴된 사나이’는 주인공의 심리 변화가 뼈대가 됐다는 설명이다. “유괴범과 사투를 벌이는 건 아주 잠깐입니다. 반전도 없어요. 유괴범이 누군지 나오니까요. 하지만 한 남자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또 어떻게 후회를 하는지 그의 인생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에는 대사가 많지 않다. ‘똥덩어리’라고 독설을 퍼부었던 말 많던 ‘강마에’ 모습은 이번 영화에 없다. 관객들은 그의 표정이나 눈빛을 보며 심리를 유추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김명민은 대사가 많고 적음은 연기 변화와 큰 관련이 없다고 설명한다. “연기란 건 그 사람이 직접 돼야 하는 거고 마음으로 느껴야 하며 눈빛을 통해 나가야 하는 겁니다. 대사는 그저 기술적인 측면일 뿐이고요. 그 사람이 되기까지가 어려울 뿐 그 이후엔 똑같아요. 그게 제 연기 철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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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마음으로, 눈빛으로 해야

영화의 결말이 인상적-스포일러(줄거리를 미리 흘려 흥미를 반감시키는 이)가 될 수 있어 구체적 설명은 생략-이라고 운을 뗐다.

김명민은 “다들 그걸 물어보시더라.”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당연히 아이 입장에서 그런 질문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제가 직접 제안했어요. 분명 딸은 이를 궁금해할 것이고, 아버지는 마음이 무너져 내릴 거란 말이죠. 반전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아이와 아버지가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번에도 아쉬움은 크다고 했다. 시사회 때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절실했단다. 뭐가 그리 부족했던 것 같냐고 묻자 명확히 대답을 못한다. 집요하게 다시 물었다. “글쎄요. 너무 호흡이 길었다고나 할까요…. 잘 모르겠어요. 본인만 아는 거라 말하기 어려워요.”라고 애써 화제를 돌린다.

난감해하는 김에 뼈 아픈 질문을 던져봤다. 지금까지 찍었던 영화에서 꽤 고배를 많이 마신 소감(?)과 이번에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은지를. “고배요? 그 말 뜻을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재치 있는 반격이 돌아온다. “사실 (제가 출연한) 드라마도 큰 흥행은 안 했어요. 베토벤 바이러스나 하얀 거탑 모두 시청률이 20% 안팎이었거든요. 영화도 그래요. 3년에 3편 정도 했는데 벌써부터 흥행을 따질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유연(?)한 인터뷰 마무리를 위해 다소 식상한 질문을 해 봤다. 존경하는 배우는 누구냐고. 그랬더니 딱 2명의 이름을 댔다. 숀 펜과 다니엘 데이 루이스. “말 그대로 저런 면이 있나 싶을 정도로 놀라운 배우들이에요. ‘나를 버리고 새로운 나의 모습을 창조해 내야 한다.’는 배우로서의 철칙을 완벽히 지켜내요. 하루라도 자신을 안주시키지 않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10-07-0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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