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 ‘특급호텔’ -美 여성작가가 본 위안부의 삶·고통

[연극리뷰] ‘특급호텔’ -美 여성작가가 본 위안부의 삶·고통

입력 2011-03-04 00:00
수정 2011-03-04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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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다. 연극 ‘특급호텔’을 보는 내내 말이다. 금순, 옥동, 보배, 선희 등 작품 속 4명의 위안부 여성들이 토해내는 치욕의 경험은 관객에게 적나라한 고통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슴에 묻어뒀던 한(恨)을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빌려 쏟아내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전해져 오는 무게감을 견뎌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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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위안부 4명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려낸 연극 ‘특급호텔’의 한 장면.
일제 강점기 위안부 4명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려낸 연극 ‘특급호텔’의 한 장면.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 ‘특급호텔’은 일본강점기 한국 위안부 여성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제목은 전쟁 당시 위안부 막사를 지칭했던 ‘특급호텔’(Hotel Splendid)에서 따왔다.

극은 위안부 여성이 느낀 분노보다 고통에 더욱 초점을 맞췄다. 극이 시작되자마자 관객은 위안부 여성들의 삶을 그대로 투영한 무대를 접하게 된다. 무대는 360도 회전하며 어느 순간 지그재그의 굽고 험난한 길을 만든다. 등장인물들은 이 무대 위를 거닐며 위안부의 삶과 전쟁에 의해 희생된 어린 일본 군인들의 이미지를 묘사해 나간다. 독백에 가까운 시적 대사나 자매애를 보여주는 그녀들의 수다로 위안부의 고통을 표현한다.

극에 등장하는 위안부 여성 선희, 금순, 옥동, 보배는 모두 10대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20만명에 달했던 위안부를 상징한다. 특히 위안부 가운데 80%가량이 집에서 끌려온 한국의 소녀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은 고향의 모습과 가족의 얼굴들, 위안부로 끌려오게 되는 과정에 대해 생생히 증언한다. 특히 군인들에 의해 ‘꽃순(처녀성)이 짓눌리는’ 순간을 묘사할 때 객석에는 잔잔한 아픔이 전해진다.

금순은 위안소 탈출을 시도한다. 성공한다. 순간 짜릿하다. 하지만, 이내 붙잡혀 다리가 잘리고 만다. 금순의 탈출로 인해 옥동은 처참하게 고문당한다. 그 모습을 보며 힘들어하던 금순은 자살을 택하고, 보배는 사랑했던 가미카제 조종사와 이별을 맞는다. 극은 일본의 패전으로 막을 내린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녀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대사도, 배우들의 절규도 다소 고통스럽고 불편했지만 극은 그 고통을 감내할 만한 충분한 감동을 준다.

원작자는 라본 뮬러. 미국 여성 작가다. 위안부 여성을 소재로 했지만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제3국인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그려냈다는 평이다. 극단 초인이 만든 ‘특급호텔’은 6일까지 공연된다. 1만 500~2만 5000원.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2011-03-0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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