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다큐] 엄마가 된 6개월 아빠… 넷째 보며 철들다

[포토 다큐] 엄마가 된 6개월 아빠… 넷째 보며 철들다

도준석 기자
도준석 기자
입력 2019-12-12 17:40
수정 2019-12-13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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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둥이 아빠’ 도준석 기자의 고군분투 육아휴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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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둥이 삼남매가 처음으로 막내동생을 보던 날. 아이들이 기뻐하는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둥이 삼남매가 처음으로 막내동생을 보던 날. 아이들이 기뻐하는 순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세월은 쏜살같아서 벌써 ‘그때’가 아득해진다.

아들 둘에 딸 하나 다둥이 아빠로 정신없이 지내고 있던 2015년 5월, 아내가 넷째를 가졌다. 넷째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설렘과 부담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출산일을 석 달쯤 앞두고 결단의 순간이 내게 찾아왔다. 조산 가능성이 있으니 아내는 앉는 것조차 삼가고 누워만 있어야 한다는 의사의 처방에 그해 12월 나는 어쩔 수 없이 육아휴직이라는 카드를 뽑아야 했다. 청소나 빨래야 어찌어찌 남의 손을 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챙겨 줘야 하는 초등학생, 유치원생 아이들의 수업 준비와 숙제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막내 재울 때 흔들어 주고 우유 먹이고 평소에도 안고 있으니 온몸의 근육이 망가졌다. 양·한방 병원을 번갈아 방문하며 치료를 했고 결국 팔꿈치 통증인 엘보도 왔다.
막내 재울 때 흔들어 주고 우유 먹이고 평소에도 안고 있으니 온몸의 근육이 망가졌다. 양·한방 병원을 번갈아 방문하며 치료를 했고 결국 팔꿈치 통증인 엘보도 왔다.
육아휴직을 한 뒤 한동안은 정말 하루하루가 꿀맛이었다. 아침마다 집에서 느긋하게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으니 단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병원에 입원한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혼자서 감당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씻기고 아침밥을 먹여 아이들을 학교, 유치원에 보내고 청소, 빨래를 끝내면 어느새 하원 시간이 닥쳤다. 설거지는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넷째를 출산한 아내가 산후조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더 바빠졌다. 출산 후 100일까지는 무거운 걸 들면 안 되는 산모를 대신해 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잠도 재워야 했다. 결국 등과 허리 상태가 나빠져 양·한방 병원을 번갈아 다녔고, 팔꿈치 통증으로 장기간 치료도 받았다.
밥을 챙겨 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평균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라면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먹여야만 했다. 청소 역시 자주 하지 못해 식탁이 깨끗할 리 없다.
밥을 챙겨 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평균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라면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먹여야만 했다. 청소 역시 자주 하지 못해 식탁이 깨끗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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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내미 머리 묶어 주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 동그란 빗으로 머리를 고정시키고 고무줄을 묶는 건 절대 불가였다. 얇은 빗으로만 가능했다.
딸내미 머리 묶어 주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 동그란 빗으로 머리를 고정시키고 고무줄을 묶는 건 절대 불가였다. 얇은 빗으로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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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라도 감기에 걸리면 돌아가면서 아프다. 특히 겨울철에는 약이 항상 쌓여 있다. 이젠 후배 엄마·아빠에게 열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 줄 정도는 된다.
한 명이라도 감기에 걸리면 돌아가면서 아프다. 특히 겨울철에는 약이 항상 쌓여 있다. 이젠 후배 엄마·아빠에게 열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 줄 정도는 된다.
한밤중에 열이 나 응급실 가는 건 기본이다. 어느 순간 응급실이 편안한 느낌이 들었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일상처럼 돼 버렸다.
한밤중에 열이 나 응급실 가는 건 기본이다. 어느 순간 응급실이 편안한 느낌이 들었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일상처럼 돼 버렸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까지는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장난감 하나를 만들어도 아이마다 요구하는 것이 다 달랐고, 누구 하나 감기라도 걸리면 돌아가면서 줄줄이 앓으니 약봉지는 여기저기 수북했다. 열이 나서 한밤중 응급실로 달려가 온갖 검사를 받고 동틀 무렵 집에 돌아온 날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나들이는 언감생심, 바깥바람 한번 못 쐬니 우울한 감정이 밀려왔다. 어쩌다 외출이라도 하는 날이면 깔끔하게 멋을 부리고 싶어졌다. 온갖 멋을 내고 외출하는 전업주부들의 심정을 그제야 알 것 같았다. 6개월의 육아휴직은 아이들과 여행 한번 못 가고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아들 삼형제로 자란 나는 여성들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지 몰랐다. 끝도 없는 집안일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 아니었다. 육아휴직을 끝내는 날,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절절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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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너무도 좋았다. 커피가 이렇게 여유 있을 때 마시는 거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커피를 마신 이후에도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태풍 전야였다.
육아휴직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너무도 좋았다. 커피가 이렇게 여유 있을 때 마시는 거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커피를 마신 이후에도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태풍 전야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엄마의 이름을 얻느라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되고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승진을 포기하고 있을 것이다. 올해 3분기까지 합계출산율 0.93명, 역대 최저. 더 내려갈 데 없이 바닥을 찍는 출산율 통계에 오늘도 내 가슴 한편은 철렁 내려앉는다.

글 사진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2019-12-13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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