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과 소통 아이콘’ 자처했던 김태호는 누구

‘통합과 소통 아이콘’ 자처했던 김태호는 누구

입력 2010-08-29 00:00
업데이트 2010-08-2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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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권의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던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29일 결국 낙마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다섯번째 ‘40대 총리’에 올라 세대교체의 주역이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 등 끊임없이 제기된 의혹과 사퇴 압박에 결국 단명으로 끝난 것.

 이번 ‘8.8 개각’에서 파격 인사의 주인공이었던 김 후보자는 그동안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리는 등 정치적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여왔다.

 그는 42세 나이에 과감하게 도전한 2004년 경남지사 보궐선거에서 ‘최연소 도백’으로 당선되며 정치권을 깜짝 놀라게 했다.

 신선한 사고와 젊은 이미지,강단있는 지도력 등을 인정받아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재선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했고 경남지사 시절 추진한 ‘남해안 프로젝트’는 국가발전계획으로 확정되는 등 성공한 도정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3선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주변의 평가와 달리 올해 초 갑작스럽게 경남지사 불출마 선언을 하며 정치권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이후 김 후보자는 차기 총리와 장관 하마평에 끊임없이 이름을 올렸고,결국 39년만의 40대 총리라는 상징성을 안고 지난 8일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

 도시적인 이미지와 달리 1962년 경남 거창에서 ‘소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김 후보자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농사를 짓더라도 농약병에 적힌 영어가 무슨 뜻인지는 알아야 한다”는 부친의 말을 듣고 큰 자극을 받아 장학생으로 거창농고에 입학했다.

 이후 서울대 농업교육과에 진학,대학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부친의 죽마고우였던 고(故) 김동영 전 의원의 집에서 하숙을 하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1992년 옥중에서 14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이강두 전 의원의 선거 캠프에 우연히 합류,당선에 기여한 것이 인생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에서 사회정책실장을 맡아 일했고,1998년 경남 도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을 비롯,‘스폰서’ 의혹,선거비용 10억원 대출,불투명한 금전 거래와 재산관리 문제 등 각종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젊고 신선한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다.

 특히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만난 시점에 대한 번복으로 여론이 악화된 가운데 청문회 답변보다 이른 시점에 박 전 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사퇴 압박이 거세졌다.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 김 후보자는 29일 광화문 개인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진 사퇴를 공식 발표했다.

 부인 신옥임(46)씨와 1남1녀.특기는 태권도,취미는 바둑이고 존경하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경남 거창(48) △거창농림고 △서울대 농업교육과 △동 대학원(교육학 박사)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시 친선대사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 △경남도의원 △경남 거창군수 △경남도지사(재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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