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송환 대남 압박”..대화물꼬 의도 해석도
북한이 7일 주민 송환 문제를 매개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 카드를 던졌다.북측의 공세적 실무접촉 제의 배경과 실무접촉이 성사될 경우 향후 남북관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북측 조선적십자회는 이날 오전 9시30분께 판문점 적십자채널을 통해 대한적십자사 앞으로 전통문을 보내 “전원(31명) 송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9일 오전 10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에서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의했다.
또 “남측에 귀순의사를 밝힌 4명의 (북쪽) 가족과 함께 나올 것”이라며 남측에 대해서도 당사자 4명을 데리고 나오라고 요구했다.
이번 실무접촉 제의는 우선 전통문에도 내포된 것처럼 전원송환을 위한 선전전 및 대남 압박용으로 풀이된다.
귀순자 4명의 북측 가족을 데리고 나올 테니 당사자 4명도 데리고 나오라는 요구는 실무접촉을 선전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편에서는 북측이 이번 실무접촉을 남북대화 재개의 고리로 삼으려는 게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있다.
북측이 이례적으로 전원송환을 요구하며 귀순공작까지 제기한 것은 이번 사건을 매개로 ‘대화공세’ 차원의 남북대화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에 따라 처음부터 계획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지난달 9일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대화를 제의할 명분을 찾기 어려웠던 북측으로서는 송환이라는 인도주의적 문제를 내걸어 남북 접촉을 제의하기가 훨씬 부드럽기 때문이다.
북측은 연초 이후 지난달 9일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될 때까지 줄곧 남북 적십자회담 등 대화공세를 펼쳐왔다.
정부도 군사실무회담 결렬로 성사되지 못했지만, 고위급군사회담이 열리면 그 이후에 적십자회담 개최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방침을 북측에 통보했었다.
그러나 적십자 실무접촉이 성사돼도 귀순의사를 밝힌 4명을 포함한 31명 전원송환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정부가 자유의사에 따라 귀순의사를 밝힌 4명을 돌려보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북측이 귀순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4명을 실무접촉에 데리고 나오라고 요구한 데 대해 정부는 간접적으로 귀순의사를 확인해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중립국감독위원회 관계자를 실무접촉에 참석시켜 증언을 하도록 하거나, 귀순의사를 밝힌 영상물 제시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접촉이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개최 자체만으로도 최근 한미 키리졸브 연습과 대북 심리전 등으로 고조된 남북긴장이 추가로 악화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무접촉이 이산가족 상봉이나 대북 지원 등 남북 간 인도주의적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적십자 실무접촉을 통해 대화의 물꼬가 트이면 결렬된 남북 군사실무회담 등 다른 채널의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분위기 조성도 기대할 수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측의 실무접촉 제의는 명분싸움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대남 압박 측면과 함께 한편으로는 이번 접촉을 통해 대화를 모색해보려는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북측이 귀순공작 의혹을 제기하는 마당에 우리 정부도 북측의 제의를 거부할 수 없는 처지다.
이에 따라 북측의 전통문을 접수한 직후인 이날 정오께 한적 명의로 전통문을 보내 원칙적인 실무접촉 수용을 통보했다.
다만, 귀순자 4명을 실무접촉에 내보낼 수는 없으며, 귀환의사를 밝힌 27명에 대해서는 이날 오후 4시 판문점을 통해 송환할 테니 관련 절차에 협조해 달라고 요구했다.
실무접촉 장소에 대해서도 북측이 제의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대신 판문점 남측지역인 평화의 집으로 수정 제의했다.
그러나 적십자 실무회담이 개최될지는 미지수다.
우리 측은 27명을 먼저 송환하고, 귀순자 4명의 귀순의사에 대해서는 실무접촉에서 북측에 간접적 방법으로 확인해줄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북측은 사실상 전원송환을 요구하며 이 문제를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논의하자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순의사를 밝힌 4명을 데리고 나오라고 요구한 북측의 주장도 타협이 쉽지 않은 쟁점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남측의 실무접촉 수정 제의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 간 불신의 벽이 깊고, 키리졸브 연습 등으로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며 “북측이 키리졸브 연습 종료 후 27명의 부분 송환을 먼저 수용하고,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계속 송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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