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경호실장..28년째 대통령 경호
아프리카대륙 중서부 가봉공화국의 알리 봉고 대통령은 지난 2009년 10월 아버지인 고(故) 오마르 봉고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파격적인 인사 조치를 취했다.자신의 오랜 ‘보디가드’인 박상철(61)씨를 외국인임에도 경호실장으로 임명한 것. 한국인 8명, 모로코인 14명을 포함해 200여명의 경호실 요원들이 박씨의 지휘를 받는다.
지난해 1월에는 박씨에게 수석의전관 자리를 겸직케 함으로써 그 위상을 한층 높였다. 박씨의 대통령 경호실 근무 경력은 올해로 28년째로, 그간 5차례나 국가훈장을 받았다.
연이어 2대째 대통령을 배출한 봉고 가문이 박씨에게 보내는 신뢰가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다. 가봉 국민들도 태권도 8단인 그를 ‘그랜드 박’ 또는 ‘미스터 박’이라 부르며 존경과 애정을 표시한다.
박씨를 오늘의 ‘영광’으로 이끈 것은 한국인 특유의 성실성이다. 박씨는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것 같다”며 “외국인인 내가 이 자리까지 오른 데 대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3남3녀 가운데 차남으로 경기도 강화에서 태어나 경기도 의정부에서 성장한 박씨는 초등학교 시절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운동화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꿈을 접어야 했다.
15살 때 어머니가 직접 지어주신 도복을 입고 태권도에 입문한 그는 절도있는 동작과 발차기에 매료돼 21세 때인 1972년부터는 아예 미군부대의 태권도 사범으로 나섰다.
태권도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았던 박씨는 1984년 해외개발공사가 가봉에 파견할 경호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선뜻 지원했다.
최종 합격자는 4명이었지만 박씨를 제외한 나머지는 출국을 포기하는 바람에 같은해 2월9일 혼자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에 도착했다.
박씨가 경호원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82년 8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봉 방문 때 벌어진 유명한 해프닝에서 비롯됐다.
공항 영접행사 도중 군악대가 애국가가 아닌 북한국가를 연주하면서 전 전 대통령이 노발대발하고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이 물리력을 써 가며 연주를 멈추게 하는 등 혼란 와중에 한국 경호원들이 침착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고(故) 봉고 대통령이 눈여겨 봤던 것.
봉고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게 공식 사과하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한 뒤 한국 정부에 경호원 파견을 요청했다고 한다.
박씨는 “당시 경호원 모집 공고가 났을 때 가봉이 어떤 나라인지 전혀 몰랐고 외국에 나가본 경험도 없었다”며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고, 태권도에 대한 자부심이 컸기에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회상했다.
대통령 경호실에 처음 배치됐을 당시에는 80여명의 경호원 가운데 절반이 프랑스인이었다. 이들은 키가 167㎝에 불과한 박씨를 깔보기 일쑤였지만 금세 상황이 역전됐다.
성실히 훈련에 참여하고 공용어인 불어공부에 매진하는 한편 가봉 경호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결국 경호실의 무술은 박씨로 인해 태권도로 바뀌었다.
실력을 인정받은 박씨는 얼마 지나지않아 선친 밑에서 외무장관, 국방장관 등을 역임한 현 대통령의 경호를 맡아 그림자처럼 보좌했다.
그는 “2010년 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때 경호 책임자로 고국 땅을 밟으니 참으로 뿌듯했었다”며 “체력과 상황이 허락한다면 앞으로 7년 정도 더 대통령을 경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가봉 정착 초기부터 주말을 이용해 태권도 보급에도 힘썼다.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태권도를 무료로 가르치고 1년에 한번 한국에 다녀올 때는 사비로 도복과 각종 훈련도구들을 사서 나눠줬다. 또 2천여명이 참가하는 태권도대회인 ‘박상철 챌린지’를 세 차례 개최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군인들의 훈련과목에 태권도가 포함됐고, 작년 9월에는 대통령 지시로 태권도 전용체육관도 문을 열었다.
가봉 한인회장도 맡고 있는 박씨는 “아프리카는 우리가 외면해서 그렇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며 “한국기업들의 진출을 최대한 도울 것이며 한인 2세들이 확고히 자리 잡아 가봉사회에 이바지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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