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3천자 장문…획기적 내용 없어
북한 ‘김정은 체제’가 1일 처음 발표한 신년 공동사설은 김정일 시대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28일 평양 금수산 기념궁전 앞 광장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영결식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김 위원장의 운구차량에 손을 올린채 광장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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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이날 노동신문(당보), 조선인민군(군보), 청년전위(청년보) 등 3개 신문에 게재한 공동사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의 형식과 내용을 답습했다.
◇신년공동사설 형식도 유훈? = 그동안 일각에서는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처럼 신년사를 육성으로 발표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북한이 김 부위원장에게 김 주석의 이미지를 심고 있다는 추정이 근거였다.
이런 관측과 달리 북한이 올해도 공동사설 형식을 이어간 데는 체제안정이 시급한 상황에서 불필요한 혼란을 초래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부친이 사망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김 부위원장이 주민에게 육성을 공개하는 등의 파격을 시도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날 공동사설은 본문이 1만3천자(띄어쓰기 포함) 정도 되는 장문이고 서두에서 전년도 결산을 시작으로 정치, 경제, 군사, 대남·대외관계 등의 정책노선을 분야별로 제시한 점도 기존 형식 그대로다.
내용면에서도 군 중심 노선인 선군정치와 강성국가 건설을 여전히 강조했고, 개혁·개방 등의 획기적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눈에 띄는 표현들 = 이번 공동사설에서 눈에 띄는 표현이 일부 등장했다.
우선 국가비전과 관련해 ‘사회주의문명국’과 ‘강성부흥’이 눈길을 끈다.
공동사설은 “우리 조국을 발전된 사회주의문명국으로 빛내여나가야 한다”며 “사회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문명을 따라 앞서자는 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의 의지였고 우리 인민의 한결같은 지향”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앞으로 대외관계에서 개방적으로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사회주의문명국’은 구체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김정은 시대에 북한의 ‘캐치프레이즈’가 될 수 있다”며 “사회주의 요소를 버리지 않으면서 외부와 관계를 풀고 정상국가를 지향한다는 의미가 깔린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공동사설은 또 제목에서 “2012년에 강성부흥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자랑찬 승리의 해로 빛내이자”고 강조했는데 이는 작년 공동사설 제목에서 쓰인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표현과 비교된다.
북한이 경제발전에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해 거창한 느낌을 주는 ‘강성대국’보다 ‘강성부흥’이란 현실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공동사설은 “인민군대에서는 올해를 인민을 위한 해로 정한 당의 의도를 높이 받들고 인민의 행복을 꽃피우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김 부위원장을 인민 지향형 지도자로 부각하고 충성과 협조를 유도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찬양·대남비난은 17년전 판박이 = 이번 공동사설을 1995년 김정일 정권의 첫 공동사설과 비교하면 흡사한 부분이 많다.
우선 김 위원장 사망을 애도하고 그의 업적을 찬양한 표현은 17년 전 사설을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올해 공동사설은 “지난해 위대한 김정일 동지와 영결하게 된 것은 5천년 민족사에서 최대의 손실이였고 우리 당과 인민의 가장 큰 슬픔이었다”고 했다.
1995년 공동사설 역시 김일성 주석의 사망을 “5천년의 우리 민족사에서 일찌기 없었던 최대의 불행”이라고 규정하고 “그 무엇으로도 만회할 수 없는 우리 당과 인민의 가장 큰 손실”이라고 표현했다.
올해 공동사설에서 김 위원장을 ‘걸출한 사상이론가’ ‘희세의 정치원로’ ‘불세출의 선군영장’ 등으로 표현한 것은 1995년 공동사설이 김 주석을 ‘주체의 태양’ ‘위대한 혁명가’ ‘절세의 위인’이라고 찬양한 것과 비슷하다.
김 위원장을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라고 칭한 것은 17년 전 사설에서 김 주석을 찬양할 때 등장한 표현이다.
김 부위원장을 부친과 동격으로 표현해 3대 세습을 정당화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1995년 사설에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는 곧 경애하는 수령님이시다”는 문구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는 곧 위대한 김정일 동지이시다”로 바뀌었다.
공동사설은 올해 김 부위원장을 ‘희세의 명장’ ‘백두의 천출명장’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최고 영도자’ 등으로 찬양했는데 17년 전 김 위원장을 ‘위대한 영도자’ ‘친애하는 지도자’ 등으로 묘사한 것보다 표현 수위가 높아졌다.
조문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를 비난한 것도 17년 전과 흡사했다.
올해 공동사설이 “민족의 대국상을 외면하고 조의표시를 각방으로 방해해나선 남조선 역적패당”이라고 공격했다.
1995년에도 “남조선 통치배들은 동족의 유고에 통일대화의 일방, 민족성원으로서의 조의례절을 지킬 대신 민족의 아픈 가슴에 총부리를 돌려댔다”고 비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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