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개를 숙이고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2017.2.1 연합뉴스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에서는 반 전 총장이 현실 정치의 벽에 부딪혀 주저 앉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 전 총장은 지난달 12일 귀국해 대한민국의 ‘대통합’과 ‘정치교체’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범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올랐지만 반 전 총장은 결국 3주일 만인 1일 오후에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오전 불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까지 반 전 총장의 측근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 전 총장은 불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정치권의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 뉴스’를 꼽았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불출마 기자회견에서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전부터 야권의 공세에 시달렸다. ‘박연차 23만달러 수수 의혹’이 대표적이다. 동생과 조카의 사기 혐의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고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퇴주잔 논란’은 반 전 총장 측이 꼽는 대표적인 ‘가짜 뉴스’ 사례다. 선친 묘소에 성묘하는 동영상이 악의적으로 편집됐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실수가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입길에 오르고 조롱의 대상이 됐다.
반 전 총장은 지지율도 눈에 띄게 떨어졌다. ‘최순실 사태’ 전까지만 해도 한때 독보적인 1위를 달렸지만, 귀국 3주일이 지나면서 그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에 머물렀다.
그가 ‘러브콜’을 보낸 야권 인사들은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 심지어 고향인 충청권 의원들조차 합류를 망설이는 처지에 내몰렸다. 세(勢)가 형성되지 않으니 지지율이 반등의 계기를 잡지 못하고, 지지율이 지지부진하니 세가 형성되지 않는 ‘악순환’에 빠져든 셈이다.
이 과정에서 여야의 유력 정치인들과 만나 합종연횡을 시도했지만,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을 설득하지 못하거나, 도리어 이용만 당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다만 반 전 총장이 중도하차 상황을 자초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국내 상황에 어두운 데다 준비가 미흡했다는 점은 캠프 내부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무소속으로 버티기에는 인력, 조직, 자금 등 모든 측면에서 압박을 받았으리라는 해석도 나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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