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C 직접 주재하며 강경 메시지…대화의 문은 열어둬
북한이 14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탄도 미사일을 발사함에 따라 ‘위기의 4월’을 넘긴 한반도 정세는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형국이다.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밝히고 북미 1.5트랙(반관반민) 대화를 마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북아메리카국장이 13일 미국 정부와 “여건이 되면 대화하겠다”고 밝히면서 ‘도발 유예’ 후 대화로의 국면 전환이 기대됐지만 북한은 도발을 중단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확인시켰다.
남북 소통로 복원과 제재와 대화의 병행을 추구하는 문재인 정부는 이르면 내달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며 대북정책의 첫 시험 무대에 서게 됐다. 북한의 도발 지속 기조는 문 대통령이 대화 드라이브를 걸기 어렵게 만들 것으로 외교가는 보고 있다.
◇한국 새 정부 출범 후 북한 첫 미사일 발사 의미는 = 우선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도발 중단을 비핵화 협상으로 가는 최소한의 조건으로 삼겠다는 한·미·중의 입장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핵무기를 실은 탄도 미사일을 가까이는 오키나와·괌 미군기지, 멀게는 미국 본토까지 보낼 수 있는 역량을 완비할 때까지 미사일 시험 발사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확인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에 이전 정부보다 유화적인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지만 당장 대화 국면으로의 정세 전환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판단 하에 발사를 강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미사일의 사정(고각발사가 아닌 정상발사시)이 4천500km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였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미국 태평양사령부는 성명에서 “미사일의 비행이 ICBM과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만약 핵실험에 버금가는 ‘전략도발’로 분류되는 ICBM이 아닌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였다면 ‘판’을 깨지 않는 선에서 북미간 협상 테이블이 마련될 때까지 핵·미사일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봐야할 전망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1t 무게의 핵무기를 실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개발하려면 트럼프 대통령 임기(4년) 내내 실험을 해도 될까말까한 상황”이라며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서두르고 반복해야할 자기 나름의 필요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천 전 수석은 “실전에 사용 가능한 핵무기와 운반 수단(미사일)을 만드는 것이 김정은의 궁극적 목표이며, 제재를 받아 결국 협상 테이블에 나오더라도 그 시점의 협상 레버리지를 최대한 끌어 올려놓기 위해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14일이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포럼 개막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발사의 택일 면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동조해 대북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중국에 견제구를 날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대통령 ‘대화 드라이브’ 시험대 올라 =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아직 외교·안보 라인 인선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기에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10일 취임후 구체적인 대북 정책 구상은 내 놓지 않았지만 현재의 제재·압박 일변도를 제재와 대화 병행 구도로 만들고, 남북한 사이에 완전히 끊어진 소통 채널을 복원하는 것이 대선 공약에 반영된 기조다. 이르면 내달 열릴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핵 외교가에 데뷔전을 치를 것으로 보이는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도발로 인해 어려워진 환경에서 닻을 올리게 됐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오전 8시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에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주재하면서 “대화가 가능하더라도 북한의 태도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함을 보여줘야 한다”며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라는 인식과 함께 북한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이후 오전 11시 40분께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실 발로 나온 정부 성명에서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와 함께 “북한이 일체의 도발을 중단하고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길로 나올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는 대화의 메시지도 담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월 12일과 3월 6일, 4월 5일, 16일, 29일에 북한 탄도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각각 발표된 외교부 성명과 외교부 대변인 논평에는 일체의 대화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새 정부의 달라진 기조를 보여준 셈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계속할 경우 한미 정상회담에서 제재와 대화 병행 기조, 단계적·포괄적 대북 협상 등 이전 정부와 차별화한 대북 정책 기조를 내세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현지시간) 공개된 미국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에 좀 더 열려 있다”며 “나는 대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지만, 특정한 상황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미국 절제된 첫 반응…“북미간 본 게임 다가오고 있다” 시각도= 이번 북한 미사일에 대한 미국의 1차 반응은 절제된 것이었다.
백악관은 13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일본보다는 러시아 영토에 가까운 곳에 영향을 주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기뻐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미사일 시험발사와는 거리가 있다는 인식을 내 비친 것으로 보였다.
결국 미국 트럼프 행정부 한반도 라인 인선이 이뤄진 뒤 북·미가 ‘샅바’를 맞잡기까지 북한은 판을 깨지 않는 수준의 도발을 계속할 공산이 커 보인다.
북한이 그 사이 핵실험과 같은 전략적 도발에 나서지 않는 한, 이런 ‘기싸움’의 국면이 일정기간 지나가고 미국의 진용이 갖춰지는 여름 이후 무렵 북미간 대화의 자리가 마련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때까지 한·미·중·일 등 간의 긴밀한 대북 공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번 발사로 북한은 마이 웨이(My Way, 내 갈길 간다는 의미), 즉 핵·미사일 개발 로드맵대로, 계획대로 갈 것임을 보여줬다”면서 “미국과의 본 게임이 멀지 않았다”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