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논란 한미관계 영향 우려 속 조언 구할 듯…‘潘채널’ 가동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이 2일 대선 최대 라이벌이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만난다. 대통령이 되고서 처음이다.대선 한 달 전인 지난 4월 8일 미국으로 출국해 하버드대에서 전직 국가원수급을 대상으로 한 초빙교수로 활동해온 반 전 총장은 전날 일시 귀국했다.
문 대통령은 10년간의 유엔 사무총장 경험과 풍부한 국제사회 네트워크를 가진 반 전 총장에게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자문을 구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당선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한때 대척점에 섰던 반 전 총장을 만나는 것은 그만큼 그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반 전 총장이 외교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라는 점도 있지만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둘러싼 국내 조치가 한미동맹과 대(對)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반 전 총장과 외교적 대응방향을 숙의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으로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지닌 반 전 총장에게 모종의 역할을 맡길 가능성도 점쳐진다.
문 대통령이 ‘사드 누락 보고’에 대한 진상조사를 “전적으로 국내적 조치이며, 기존 결정을 바꾸려거나 미국에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한미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미 정상회담을 불과 20여일 남겨둔 상황에서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좌하기에 앞서 이런 우려를 말끔히 해소하지 않으면 사드는 물론 북핵문제 등 양국이 보조를 맞춰야 할 산적한 현안 해결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일각에서는 공식 정부 라인이 이번 사드 조치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진의를 미국 측에 전달하는 것과 별개로 미국 정·관계에 손이 닿는 ‘반기문 채널’ 가동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치적 대척점에 섰었던 문 대통령과 반 전 총장이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의기투합하는 모양새이지만 두 사람은 한때 서로에게 날을 세웠던 ‘정치적 라이벌’ 관계였다.
문 대통령은 당시 “반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는 건 박근혜 정권의 연장이고 이명박 정권의 부활”이라고 견제했고, 반 전 총장 역시 “사드 배치에 대해 말이 오락가락한다”거나 “어떻게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와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보다 평양을 먼저 가겠다는 소리를 하느냐”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반 전 총장은 대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로서의 신의와 존중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반 전 총장은 참여정부 때 함께 했던 분으로 유엔 사무총장 당선에도 참여정부가 많은 노력을 했다”고 친근감을 표했고, 반 전 총장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가까이 지내는 사이로, 곧은 분이라 평소 존경했다”고 했었다.
반 전 총장이 대선을 중도 하차하자 문 대통령은 “꼭 정치가 아니더라도 외교 등 다른 분야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실 길이 많이 있을 것”이라며 “외교 문제에 관해서는 많은 자문과 조언을 받고 싶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 체류 중이던 반 전 총장은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달 10일 입장문을 내 “안보태세를 굳건히 하면서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정립하고 중국·일본·러시아 등 인근국과의 긴밀한 관계 구축이 외교적 급선무”라고 조언하기도 했고, 지난달 18일에는 문 대통령과 통화에서 “도울 일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도와주신다니 매우 든든하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에 반 전 총장 최측근으로 꼽히는 강경화 전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를 전격 발탁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