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공식라인’인 리선권 내세워 거친 톤으로 南 비난
남측이 북한의 고위급회담 일방 연기에 대해 유감을 촉구한 것과 관련, 북측이 17일 공식라인을 동원해 정색하고 반박하면서 북미관계와 더불어 남북관계도 심상치 않은 양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남북 정상이 지난달 27일 회담을 하고 ‘판문점 선언’을 채택하면서 순풍을 다는 것 같던 남북관계가 회담 20일 만에 북미관계 난기류에 휘말려 출렁이는 기색이다.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남조선 당국은 우리가 취한 조치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고 필요한 수습 대책을 세울 대신 현재까지 터무니없는 ‘유감’과 ‘촉구’ 따위나 운운하면서 상식 이하로 놀아대고 있다”면서 다소 거친 표현들을 동원해 우리를 비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월 1일 신년사 이후 북한이 남측을 이 정도 어조로 비난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북한이 전날 새벽 한국과 미국 공군의 대규모 연합공중훈련인 ‘맥스선더’ 훈련을 비난하며 그날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을 중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북한이 당시 “미국도 남조선 당국과 함께 벌리고 있는 도발적인 군사적 소동 국면을 놓고 일정에 오른 조미(북미) 수뇌상봉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이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입을 빌려 “북미정상회담에 응할지 재고려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가 미국에 대한 기싸움 성격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북한이 이날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단장인 리선권 위원장을 내세워 남한만을 겨냥한 메시지를 던졌다.
특히 ”미국 상전과 한짝이 되여 역대 최대 규모의 연합공중전투 훈련을 벌려 놓고…“라는 등 지난해 남북 대결구도에서나 나왔을 법한 ‘미국은 남한의 상전’이라는 프레임이 다시 등장한 것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일단 우리 정부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이다. 곧바로 맞대응했다가는 순식간에 긴장이 고조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리선권 위원장의 입장을 잘 봤다“면서 ”당장 대응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만 리선권 위원장이 ”북남 고위급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대목에서 ‘엄중한 사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리선권 위원장이 회담 무산의 원인으로 거듭 맥스선더 훈련과 태영호 전 공사의 발언을 지목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한 점에 비춰볼 때 ‘엄중한 사태’란 이 두 가지 사안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따라서 한편에선 오는 25일 맥스선더 훈련이 종료되면 자연스레 남북관계가 풀릴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있지만, 이 두 사안에 대해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남북관계가 상당 기간 공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