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흐름 개선에 장애 안 만들려는 수위 조절”“남북·북미관계 틀어지면 판 깨는 강력카드로 쓸 의도”
북한이 1일 남북고위급 회담에선 정작 문제 삼지 않았던 한미연합훈련과 탈북종업원 송환문제를 다시 거론하고 나서 주목된다.눈여겨볼 대목은 거론하는 방법이다. 한미훈련에 대해선 관영 매체들을 통해, 탈북종업원 송환문제는 유엔 인권기구를 통해서다. 남북이 마주한 탁자에선 정면으로 거론하지 않으면서도 ‘외곽 때리기’를 하는 셈이다.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 관계 개선의 흐름이 이어지고 남북 간에도 판문점 선언의 이행이 본격화하는 과정에 들어선 만큼 긍정적인 흐름의 ‘판’을 깨지 않으면서도 해당 이슈에 대해선 물러서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6면에 게재한 개인필명의 ‘정세론 해설’에서 남측의 환태평양훈련(림팩) 참가와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겨냥해 “판문점 선언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한 주장이기는 하나, 개인필명을 사용함으로써 격(格)을 일단 낮췄다.
그럼에는 이는 1일 대남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우리 군의 림팩 참가를 처음 비난한 데 이어 나온 것이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 삼지 않았으나, 북한은 한미 공중연합훈련 ‘맥스선더’ 등을 빌미로 지난달 16일로 예정됐던 남북고위급회담을 무산시켰고 그 이후에도 유사한 주장을 이어왔다.
그러나 북한은 이틀 전 판문점 남측지역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한미연합훈련을 회담 의제로 올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고위급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회담이 끝난 뒤 브리핑에서 “한미군사훈련 문제는 오늘 회의에서 논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북측이 한미군사훈련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네”라고 답했다.
2016년 중국식당에서 일하다 집단 탈북한 종업원 문제에서도 북한은 고위급회담에서 쟁점화하지 않은 채 우회적인 방법을 택해 대응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조명균 통일장관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탈북종업원 송환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북측이 여종업원 문제에 대해 오늘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일 스위스 제네바주재 북한 대표부가 지난달 30일 공보문을 내고 탈북종업원 송환과 이를 위한 유엔 인권기구의 조치를 촉구했으며, 유엔인권최고대표에게도 다시 송환을 촉구하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지난달 19일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의 기자와의 문답, 29일에는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탈북종업원 송환을 요구한 바 있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집단탈북 종업원 송환문제로 남북 간의 교류와 협력에 직접적인 장애물을 조성하지 않으면서, 국제인권기구를 통해 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경우에 따라선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집단 탈북종업원 문제가 국제적인 인권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북한 최고지도자의 뜻이 강한 상황”이라며 “북한이 판문점선언 이행 등을 위해 단기적으로 한미훈련·탈북종업원 문제가 남북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수위 조절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그러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남북, 북미관계가 틀어졌을 경우를 대비해 장외에서 압박의 명분을 확보하겠다는 이중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북한이 본 회담에서 한미훈련과 탈북종업원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간 보기 힘들었던 매우 전향적인 자세”라면서 “스탠스를 낮춘 상태에서 판문점선언 이행 문제를 잘 풀어보겠다는 태도”라고 평가했다.
홍 연구위원은 “그러나 한미훈련과 탈북종업원 문제는 남북·북미 관계가 경색되면 북한이 판을 깨는 가장 강력한 카드로 활용할 소지가 크다”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