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영웅”vs“독립군 토벌” 죽어서도 눈 못 감는 백선엽

“6·25 영웅”vs“독립군 토벌” 죽어서도 눈 못 감는 백선엽

이주원 기자
입력 2020-07-12 22:26
수정 2020-07-13 01:09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10일 별세 백선엽도 현충원 안장 논란

해방 이전 日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
간도특설대서 활동… 한 번도 사과 안해
軍인권센터 “백씨 야스쿠니 신사 가야”
재향군인회 “서울현충원서 영면해야”
유족 “아버지도 대전현충원 안장 만족”
이미지 확대
빈소 찾은 이해찬
빈소 찾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2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세상을 떠난 백선엽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항일 독립군을 토벌했던 그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과 6·25전쟁에서의 공이 큰 만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 것이다.

1920년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난 그는 해방공간인 1946년 육군 중위로 임관해 제1사단장, 제1군단장, 제7·10대 육군참모총장, 제4대 연합참모본부 의장 등을 지냈다. 1950년 4월 1사단장으로 취임해 6·25전쟁 다부동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6·25전쟁 영웅’으로 불린다. 태극무공훈장과 을지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은성무공훈장, 캐나다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논란은 해방 이전 행적에서 비롯됐다. 교직에 종사했지만 군인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만주국 봉천군관학교에 진학한 그는 1943년 4월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해 조선인 독립군 토벌작전을 펼친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다. 간도특설대는 일제 패망 전까지 사회주의 계열 항일 무장 독립운동 세력인 동북항일연군과 팔로군을 대상으로 108차례 토벌 작전을 벌였다. 그는 생전에 간도특설대 활동은 시인했지만, 한 번도 사과나 사죄를 하지 않았다.
이미지 확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 확대
탈북민 출신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이 12일 빈소에 헌화하기 위해 꽃을 건네받고 있다.  연합뉴스
탈북민 출신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이 12일 빈소에 헌화하기 위해 꽃을 건네받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보훈처는 최근 백 장군의 병세가 악화하자 유족과 안장 문제를 협의해 왔다. 서울현충원 장군묘역은 1996년부터 만장 상태이기 때문에 대전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으로 지난 11일 최종 결정됐다. 법적으로는 국립묘지 안장 대상일지라도 친일 행적을 감안하면 안장을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았다. 25개 독립운동가 선양단체 연합인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은 12일 “6·25 공로가 인정된다고 독립군을 토벌한 친일파를 현충원에 안장하는 것이 나라다운 나라인가”라고 밝혔다. 군 인권센터도 “백씨가 갈 곳은 현충원이 아니라 야스쿠니 신사”라고 했다.
이미지 확대
백 장군이 1951년 7월 10일 유엔군 대표들과 휴전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개성으로 가기 전 찍은 기념사진. 왼쪽부터 당시 직책으로 로런스 크레이기 미국 극동공군부사령관(공군 소장), 백 제1군단장(육군 소장), 찰스 터너 조이 극동해군사령관(해군 중장), 매슈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육군 대장). 연합뉴스
백 장군이 1951년 7월 10일 유엔군 대표들과 휴전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개성으로 가기 전 찍은 기념사진. 왼쪽부터 당시 직책으로 로런스 크레이기 미국 극동공군부사령관(공군 소장), 백 제1군단장(육군 소장), 찰스 터너 조이 극동해군사령관(해군 중장), 매슈 리지웨이 유엔군사령관(육군 대장).
연합뉴스
반면 보수진영은 예우 차원에서 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향군인회는 이날 “6·25전쟁 시 함께 싸웠던 11만명의 호국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서울현충원에서 영면하실 수 있도록 즉각 조치하라”고 밝혔다.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조문 뒤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게 혁혁한 공로를 세우신 분”이라며 “뭣 때문에 서울현충원에 안장을 못 하고 내려가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조의는 표하되 안장지를 둘러싼 추가 논란은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청와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빈소에 조화를 보낸 데 이어 이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 김유근 안보실 1차장, 김현종 안보실 2차장 등이 조문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차원의 논평 없이 이해찬 대표가 빈소를 방문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이날 조문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정부는 육군장(葬)으로 (고인을) 대전현충원에 잘 모실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 정치권은 논란을 키우고자 하지만 유족들의 생각은 이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장남 남혁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아버지도, 가족도 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 “아버지도 생전에 대전현충원 안장에 만족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이며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진다. 안장식은 15일 오전 11시 30분 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에서 진행된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2020-07-13 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