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도 마트행… 이러다 다 문닫을판”

“단골도 마트행… 이러다 다 문닫을판”

입력 2010-01-30 00:00
수정 2010-01-30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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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반값전쟁 유탄맞은 축산물 도매시장 르포

29일 오전 9시 서울 독산동 축산물 도매시장. 수백여 곳의 정육 도매업소가 밀집한 이곳은 휑한 분위기였다. 찾는 이가 거의 없었다. 군데군데 문을 닫은 업소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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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간의 삼겹살 할인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29일 서울 롯데마트 영등포점에서 삼겹살이 100g에 640원에 판매되고 있다. 음식점 주인들까지 마트로 몰리면서 도매업소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대형마트 간의 삼겹살 할인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29일 서울 롯데마트 영등포점에서 삼겹살이 100g에 640원에 판매되고 있다. 음식점 주인들까지 마트로 몰리면서 도매업소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도매상 정화연(56)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10년째 삼겹살 등 돼지고기를 판매해 온 정씨는 “대형마트들이 돼지고기 삼겹살을 원가보다 낮은 100g당 600원대까지 할인해 파는 바람에 평소 물건을 떼가던 단골 식당 주인들까지 마트로 몰려가는 실정”이라고 푸념했다. 그는 “돼지 한 마리 잡으면 삼겹살은 보통 15㎏가량 나오고, 100g의 도매 원가가 1100원 정도여서 도저히 마트와는 경쟁을 할 수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씨의 업소는 단골 고객이 급감하면서 하루 매상이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하루에 취급하는 돼지도 평소의 절반인 2∼3마리로 줄었다. 인근 도매업소 주인 이모씨도 “돼지를 도둑질해 오든지, 수입산을 속여 팔지 않는 한 절대로 대형마트 가격엔 팔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형마트 간 출혈경쟁에서 비롯된 ‘반값 삼겹살 전쟁’에 애꿎은 도매상들의 등만 터지고 있다. 가격을 무기로 삼은 대형마트들의 전방위 공세에 소비자는 물론 식당 주인 등 소매업자들까지 마트로 몰리면서 도매업소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

특히 유통질서가 왜곡되면서 서울 독산동과 마장동 등에 밀집한 축산물 도매시장이 폐업 위기에 처해 양돈농가 피해도 우려되고 있다.

독산동 축산물 시장에서 돼지고기 도매업소를 운영하는 박정근(52)씨도 대형마트의 횡포에 분통을 터뜨렸다.그는 “거래가 급감하다 보니 신선육 형태로 들여온 돼지들이 팔리지 않은 채 냉동고에 그대로 쌓여 손해가 막심하다.”면서 “돈 많은 대형 마트들이야 삼겹살을 ‘미끼상품’으로 삼아 손님을 끈 뒤 다른 품목으로 만회하면 되지만, 우리는 거래처가 끊기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대형마트간 삼겹살 출혈경쟁이 지속되면 업계 유통질서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기엽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겹살 할인경쟁이 심화되면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후생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중간 도매상 등은 결국 마진을 유지하기 위해 육가공 업체를 압박할 것이고, 이는 결국 유통구조의 가장 아래에 있는 양돈농가까지 도미노식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양돈협회 관계자는 “‘반값 삼겹살’이라는 비정상적인 가격체계가 계속 유지되면 도매시장을 거쳐 양돈 농가에까지 직접적인 타격이 전해질 것이 뻔해 적절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2010-01-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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