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제중원은 우리 역사”…세브란스병원 “모든 국립기관을 조상 삼는 발상”
TV 드라마로 제작돼 화제를 모았던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을 두고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이 서로 자기의 역사라고 주장하며 낯뜨거운 공방을 벌이고 있다.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 공방의 포문은 서울대병원이 먼저 열었다.
세브란스병원의 협찬으로 TV드라마 제중원이 방영이 한창이던 지난 4월호 병원소식지의 4개면을 털어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이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싣고 제중원이 서울대병원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세브란스병원이 TV 드라마 제중원을 후원하면서 제중원을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으로 규정한 데 대한 노골적 반발인 셈이었다.
서울대병원 역사문화센터 김상태 교수는 이 글에서 “제중원은 고종과 조선 정부가 1885년 서양의학도입을 능동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이라며 “1894년 미국 북장로회에 이관되기까지의 제중원은 100% 국립병원인데도 사립대인 연세대가 국립병원의 역사까지 자기 학교로 인식하는 것은 역사의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근거로 선교사들이 제중원의 영문 표기를 ‘The Royal Hospital’(왕립병원),‘The Government Hospital’(정부병원)로 표현한 점 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또 “고종과 조선정부는 1894년 제중원의 운영권만 북장로회에 넘겼을 뿐 소유권을 넘긴 것은 아니다”라며 “고용의사인 에비슨도 조선 정부가 제중원 개조에 소요된 비용을 지불하기만 하면 제중원의 모든 재산을 반납키로 약속했으며,회고록에도 제중원을 왕립병원이라고 지칭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일제치하 서울대병원의 전신인 대한의원(광제원)이 제중원의 부지와 건물을 사용한 점으로 볼 때도 제중원은 서울대병원의 역사와 맥이 닿는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하지만,이에 대해 세브란스병원은 “일제시대를 공백으로 비워놓고 조선시대의 국립(國立)이란 표현에만 집착하는 서울대병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면서 일축하고 있다.
여인석 연세대 의학사연구소장은 “서울대병원은 조선시대의 의료기관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먼저 직접적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경성제국대학과의 관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면서 “만약 서울대학과 경성제대를 연속적 관계로 본다면 각 기관의 설립주체인 대한민국정부와 조선총독부,나아가 일본제국도 연속적인 관계로 봐야 한다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여 소장은 또 “서울대병원이 시대와 설립주체를 초월해서 모든 국립기관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조선의 역대 왕들을 자신의 조상이라며 종묘에 가서 제사지내겠다는 것과 같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그는 제중원의 설립주체가 조선정부라는 서울대병원의 주장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여 교수는 “서울대병원은 제중원 설립 당시 알렌이 병원건립안을 조선정부에 제출한 사실을 고의로 누락하고 있다”면서 “알렌의 요청에 따라 병원이 세워졌으므로 알렌이 제중원을 설립했다는 기술은 무리한 주장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연속성에 대해서도 “1894년 제중원이 조선정부의 직제에서 빠져 선교의료기관이 되고 이후 1904년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어졌지만,조선정부는 1906년에도 세브란스병원을 여전히 제중원으로 부른 근거가 규장각 문서로 보존돼 있다”고 강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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