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추정 원칙 위반,공무담임권 제한,형평성 위배
이광재 강원도지사의 직무수행을 막았던 지방자치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은 해당 법조항이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현행 지방자치법 조항(제111조 제1항 제3호)은 지방자치단체장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그 형이 확정되지 않은 경우에도 부단체장이 권한을 대행하게 규정한다.이는 재판이 끝나지 않았어도 범죄 혐의가 있는 자치단체장은 막대한 권한을 수반한 공무를 계속 수행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깔고 있다.
하지만 헌재는 이 조항이 형사피고인을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간주해야 한다는 헌법(제27조 제4항)이 정한 형사재판의 기본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이런 원칙을 적용하는 데는 일반 국민은 물론 공무를 수행하는 자치단체장이라 해도 예외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재판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지난 6.2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됐지만,당선 직후 항소심에서 징역형(징역 6월,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아 지난 7월1일 도지사 취임과 동시에 직무가 정지됐었다.
이에 그는 직무정지 직후 관련 법조항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재는 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헌재는 주민들이 직접선거로 뽑아 4년 임기가 보장된 자치단체장을 주민의 신뢰 훼손을 이유로 관련 범죄의 직무관련성이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직무에서 배제하는 것은 공무담임권을 필요 이상으로 제한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도 판단했다.
나아가 향후 법 개정은 직무 관련성이나 고의성 여부,주민의 신뢰 훼손 정도 등을 가려서 직무를 정지해야 할 이유가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만 직무정지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기에는 이 지사가 선거 전 유죄선고를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던 도민들의 지지로 당선이 돼 과도하게 직무수행을 제한하는 것이 다수 도민들의 뜻과 정서에 반하고,도정(道政) 공백 사태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가 크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헌재는 이번 결정에서 국회의원과 교육감 등 다른 선출직 공무원과의 형평성도 고려했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이나 교육감은 하급심에서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도 형이 확정될 때까지 계속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 유독 자치단체장에게만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본 것이다.
헌재는 이런 종합적인 판단에 근거해 이날 재판관 5(위헌)대 1(헌법불합치)대 3(합헌)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앞서 2005년에는 같은 법조항에 대해 재판관 4(위헌)대 4(합헌)대 1(각하)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당시에도 임기가 보장된 자치단체장을 형이 확정되기도 전에 죄인 취급해 직무를 정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나,지방행정의 위험을 예방한다는 공익적 목적을 더 중시하는 다수 의견에 밀렸다.
이후 5년만에 다시 이뤄진 결정에서 헌재는 자치단체장의 기본권을 희생해서라도 공익 실현에 충실해야 한다던 입장에서 벗어나,무죄추정과 평등,주민자치 등 보편적인 가치에 무게를 두면서 점차 성숙해져가는 지방자치제에 신뢰를 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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