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노인들 “자식들 어려운데…빨리 가야지”

홀몸노인들 “자식들 어려운데…빨리 가야지”

입력 2010-09-14 00:00
수정 2010-09-1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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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몸노인 100만시대> ① “명절이 더 외로워”

45살 때 남편을 떠나 보낸 오옥임(83) 할머니는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자식 4명을 키웠지만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큰아들은 2년 전 사업에 실패한 뒤 연락이 끊겼고 막내딸은 10년도 더 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뒤 깜깜무소식이다.

큰딸과 작은아들은 간혹 연락을 하며 지내지만 생활이 어려워 손을 내밀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오 할머니는 서울 종로구 이화동 달동네에 있는 서너 평짜리 쪽방에서 살고 있다.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지만 지난 8일 찾은 할머니 집은 환기가 어려워서인지 여전히 후텁지근했다.

손가락과 발가락 관절이 굽어 있는 할머니는 얘기를 하면서도 양발의 엄지발가락을 연방 주물렀다.

그는 “발이 이 모양이어서 겨울에도 양말과 신발을 못 신고 슬리퍼만 신고 다닌다”고 말했다.

오 할머니는 “손자들도 내가 여기 사는지도 모른다”면서 “이번 추석에도 손자들 얼굴 보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별보고 나가서 별보고 들어오면서 시장에서 생선 팔아 애들을 키웠다”면서 “그렇다고 서운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수입은 노령연금으로 받는 월 9만원에 인근 광장시장에서 남들 행상 일을 도와주고 수고비 조로 하루 5천∼1만원 정도 받는 것이 전부다.

할머니는 “장사가 안 되는 날은 5천원 받는 것도 미안해서 안 받는다”며 “그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장에 나가야 생활이 된다”고 말했다.

이 돈으로 월세 10만원과 차비, 식비, 전기세와 수도세 등 공과금, 휴대전화 요금 등을 내며 빠듯하게 살고 있다.

그는 “자식들이 다들 어렵게 살아 내가 도움받을 형편은 안 된다. ‘빨리 가야지’ 싶다. 요즘에는 친정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오 할머니는 친정 엄마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듯 “엄마야. 나 아퍼. 엄마야...”하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는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니다.

그동안 이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인데, 최근에야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파견된 돌보미를 통해 수급권제도를 알게 돼 신청을 준비 중이다.

오 할머니는 “어떻게든 입에 풀칠은 하려고 날마다 바쁘게 살다 보니 다른데 신경 쓸 틈이 없었다”면서 “어떻게든 수급자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급증하는 홀몸노인..경제난이 가장 큰 걱정

경제적 어려움 속에 혼자 사는 노인은 오 할머니뿐만이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홀몸노인은 올해 104만3천989가구로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작년(98만7천86가구)에 비해 5만6천903가구가 늘어난 것으로, 전체 노인(535만여명) 5명 중 1명은 혼자 사는 셈이다.

독거노인은 2006년 83만3천여 가구였으니 불과 4년 만에 25% 이상 급증했다.

통계청은 2020년에는 홀몸노인이 15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픽> 홀몸노인 가구 현황


(서울=연합뉴스) 장성구 기자 = 통계청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홀몸노인은 올해 104만3천989가구로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홀몸 노인 가구당 월소득 분포 및 가구 수 추이. sunggu@yna.co.kr


가족의 해체와 더불어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홀몸노인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독립된 삶을 추구하며 혼자 사는 노인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전국 60세 이상 노인 1만5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홀몸노인의 월평균 소득은 56만원에 불과하며 이들 중 64.3%는 소득이 1인가구 최저생계비(50만4천원)에도 못 미치는 50만원 미만이다.

비단 홀몸노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노인들의 경제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자식이 반드시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인식이 쇠퇴하고 있지만 사회가 이를 적절히 대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만 60세 이상으로 국민연금을 받는 이들은 현재 총 237만여명으로, 전체 60세 이상 인구(760만명)의 31%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제도가 1988년 1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됐는데 당시 이런 직장에 다니지 않았다면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국민연금 제도가 시행 20여년 밖에 되지 않아 수혜의 공백 기간이 발생한 것”이라며 “1999년부터 자영업자 등까지 제도가 확대됐으니 시간이 지나면 이런 공백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복지 사각지대..저소득 노인 공공부조제 시급

홀몸노인들의 사정은 이처럼 열악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인색하다.

‘2008 노인실태조사’에 나온 소득 50만원 미만 홀몸노인 가구 비율(64.3%)을 전체 홀몸노인 규모(104만4천명)에 대입하면 67만여명이란 수치가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생각하는 ‘보호가 필요한 홀몸노인’ 규모는 이보다 턱없이 적은 17만6천명 정도에 불과하다.

보건복지부 노인정책과 김현주 사무관은 “소득뿐만 아니라 건강, 결식 여부, 사회적 고립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에 규모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보호가 필요하다고 보는 홀몸노인조차도 적절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홀몸노인 집에 일주일에 1∼2차례 방문하고 말벗이 돼주는 ‘노인 돌보미 서비스’ 제공자는 13만5천명 정도다.

요(要)보호 홀몸노인 중 나머지 4만여명은 예산 부족으로 돌보미 서비스 대신 자원봉사자 등을 통해 최소한의 안전 확인 정도만 이뤄지고 있다.

노인 돌보미 숫자도 총 5천500여명으로, 돌보미 한 명당 평균 25명 정도의 홀몸노인을 담당하고 있어 세심하게 챙겨주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생활이 어려운 노인은 늘어나는데 정부의 지원은 이에 미치지 못하다는 점은 외국과의 비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가구의 상대적 빈곤율(2006년 기준. 전체 가구 중위소득의 50% 미만에 속하는 가구의 비율)은 45%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이는 OECD 국가 노인가구 평균 빈곤율(13%. 2005년 기준)의 3.5배에 달하는 수치로,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가장 빈곤율이 높은 아일랜드(31%)보다도 14%포인트나 높다.

그러면서도 전체 복지예산 가운데 노인을 위해 쓰는 예산의 비율은 16.85%로, OECD에서 멕시코(13.89%) 다음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노인빈곤 문제 해소를 위해 2008년부터 기초노령연금제도를 도입, 65세 이상 노인의 하위 70%에 대해 월 9만원 정도씩 지급하고 있지만 액수가 적어 소득증대 효과는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연구원 석상훈 연구원은 “기초노령연금이 수급대상자 확대로 연금 사각지대 해소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했지만 수급액의 수준이 낮아 노인들의 빈곤문제를 해소하기는 힘든 것으로 보인다”면서 “저소득 노인층을 위한 별도의 공공부조제도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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