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노인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산 너머 산’

홀몸노인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산 너머 산’

입력 2010-09-14 00:00
수정 2010-09-14 08:32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서울 중구 신당동 고시원에서 혼자 사는 김성진(79) 할아버지는 새까맣게 때가 낀 선풍기 바람에 의지해 올해 여름을 보냈다.

김 할아버지의 한 달 수입은 노인연금 9만원에, 일주일에 3번 초등학교 순찰 지킴이 활동을 하며 받는 공공근로 임금 20만원 등 29만원이 다다.

고시원 방값 23만원을 빼고 남은 6만원으로 담배와 반찬거리를 조금 사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지만 약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담배라도 끊으면 돈을 아낄 텐데 ‘유일한 낙’이어서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는 “몸이 너무 안 좋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보건소에 가 약을 탄다”면서 “약값이 다 해서 3만∼4만원 정도지만 나 같은 사람한테는 정말 큰돈”이라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다.

경제적으로 지원을 받기는커녕 거의 연락도 주고받지 않고 사는 아들과 딸이 한 명씩 있다는 이유에서다.

동사무소에 여러 번 기초생활수급권을 신청해 봤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자녀가 부양능력이 있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들, 딸도 어렵게 살아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다고 사정을 해봤지만 그런 분들이 너무 많아 다 수급권을 주기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돈이 지금보다 10만원만 더 있어도 좋겠다”며 “돈이 생기면 약이라도 꾸준히 먹고 싶다”고 말했다.



◇ “자식 연락도 닿지 않는데..”

기초생활수급제도는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있어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자녀가 발목을 잡아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홀몸노인들이 적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홀로 사는 오옥임(83) 할머니는 요즘 2년여 전부터 연락이 끊긴 큰아들을 수소문 중이다.

기초생활수급권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큰아들로부터 ‘금융정보제공 동의서’를 받아 큰아들이 부양능력이 없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 할머니는 “큰아들이 사업실패 이후 종적을 감췄는데 이제 와서 이런 일로 찾는다는 게 가슴이 아프다”면서 “하지만 큰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으면 기초생활수급권을 받기 어렵다고 해 이리저리 찾고 있다”고 말했다.

끝내 큰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그를 ‘실종자’로 신고하는 방법이 있다.

실종 신고 한 달 뒤부터는 수급권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 홀몸노인 가구 현황


(서울=연합뉴스) 장성구 기자 = 통계청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홀몸노인은 올해 104만3천989가구로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홀몸 노인 가구당 월소득 분포 및 가구 수 추이. sunggu@yna.co.kr


하지만 오 할머니 큰아들의 경우 단순히 연락이 닿지 않는 것뿐이지 ‘실종자’는 아니기 때문에 오 할머니는 이런 방법이 내키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 자식이 다세대주택만 소유해도 불가능

자녀가 연락이 닿는다 해도 ‘부양의무자 기준’에 막혀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가구의 소득인정액(소득평가액+재산의 소득환산액)이 최저생계비 이하면 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는데,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다 해도 부양능력이 없어야 한다.

부양의무자는 1촌의 직계가족(부모, 자녀) 및 그 배우자(사위, 며느리)로, 부양의무자의 소득인정액이 부양의무자 및 수급권자의 최저생계비 합의 130% 이상이면 부양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급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4인 가족인 부양의무자의 경우, 자동차가 없고 부동산이나 금융재산 등이 5천400만원 이하(대도시)일 때 소득이 월 243만원 이상이면 부양의무가 있다고 판단된다.

자동차가 있거나 부동산이나 금융재산의 합이 5천400만원을 넘으면 소득이 더 적더라도 부양의무가 있다고 여겨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본인이나 부양의무자가 생계형으로 트럭을 갖고 있거나 다세대주택 한 채만 있어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태진 기초보장연구실장은 “지금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너무 박해 주변의 가족들까지도 빈곤층으로 내몰 수 있다”면서 “현재 최저생계비의 130%로 돼 있는 부양능력 판단 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 최후수단 ‘부양 회피’ 증명은 더 어려워

부양의무 판단기준이 이처럼 박하다 보니 김 할아버지의 사례처럼 자식들이 법적으로는 ‘부양의무가 있다’고 결론이 났지만 실제로는 생활이 어려워 부양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홀몸노인들은 실제로는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노인들보다 훨씬 열악한 처지에 놓이게 되지만 정부로부터 이렇다 할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이처럼 ‘부양능력이 있는 자식이 있지만 지원을 못 받는 경우’에도 수급자로 선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기는 했다.

일선 시.군.구에서 한 분기에 한 번씩 심의위원회를 열어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ㆍ회피하는 경우’를 판단, 수급권을 주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수급권이 주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자식들이 ‘부양 거부’를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원만하게 심의가 통과되는데 우리 정서상 부모와 자식이 이런 서류를 요청하고 사인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금도 할아버지도 생활이 어렵지만, 자녀들에게 차마 ‘부양 거부’를 증명하는 서류를 보내달라고는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자식들로부터 ‘부양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증거서류를 받지 않는 한 수급권을 주기 어렵다”면서 “사정이 딱하다고 명확한 근거자료 없이 수급자로 선정했다가는 감사에서 걸리기 딱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