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함’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뚱뚱함’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입력 2011-06-08 00:00
수정 2011-06-0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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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출간

미국에서 뚱뚱한 여성 열두 명이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내가 뚱뚱하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자동차 불빛에 놀란 사슴처럼” 반응했다. 누가 봐도 뚱뚱한 사람이 공공연히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나는 뚱뚱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엄살이 지나친 정상체중 사람들 뿐이다.

이렇게 선뜻 입에 담기 쉽지 않고 심지어 정치적이기까지 한 단어 ‘팻(fat)’을 전면에 내세운 책 ‘팻’(소동 펴냄)은 비만과 지방에 담긴 문화인류학을 다채롭게 풀어낸 책이다.

”세상은 온통 지방 논의로 넘쳐나는 듯하지만 지방을 다양한 차원에서 지성적으로 사고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출발한 것이다.

인류학자 열세 명이 ‘살찐’ ‘기름진’ ‘지방’ ‘비만’ ‘비옥한’ 등 다양한 뜻을 가진 ‘팻’을 키워드로 세계 여러 사회의 이야기를 전하고, 돈 쿨릭 뉴욕대 교수와 앤 메넬리 캐나다 트렌트대 교수가 엮었다.

여성 지위가 높은 스웨덴에서도 비만은 10대 소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다.

마르고 인기가 많은 소녀들일수록 자기가 뚱뚱하다고 열심히 말하고, “뚱뚱한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목격되면 낮은 지위로 떨어지”기 때문에 과체중 아이와는 가까이하지 않으려 한다.

브라질 여성들에게 지방은 빈곤과 유색인종의 상징이어서 중산층 여성들은 월급보다 많은 돈을 들여 지방흡입약을 구입한다. 그런가하면 포르투갈의 한 여성은 음식을 거부함으로써 성녀로 칭송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문화권에서 비만이 일종의 ‘죄’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니제르의 소녀들은 이상적인 몸매인 뚱뚱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먹는다. 갑자기 살이 찌면서 생긴 튼살 자국이 선망의 대상이라 인형에 튼살 자국을 뜻하는 줄무늬를 그리기도 한다.

또 힙합 문화에서는 남성의 뚱뚱함이 ‘초(hyper)남성성’을 뜻한다.

”이런 남성성을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배의 문제, 즉 다른 남자들과 여자, 돈줄을 통제하고 있는가다. 이런 남자는 신체의 크기와 밀접히 관련있는 폭력을 통해서 존중받고 부에 접근한다. (중략) 여기서 뚱뚱함은 통제가 결여되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다.”(111쪽)

이 책에서는 이렇게 ‘뚱뚱함’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더불어 올리브유, 돼지기름, 스팸 등 ‘기름진’ 음식에 담긴 문화적 배경도 추적한다.

현대인의 생활습관과 자아까지 지배하게 된 ‘팻’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피상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뚱뚱함’의 폭넓은 함의를 파악할 수 있다.

김명희 옮김. 375쪽. 1만7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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