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 여부 놓고 갈등…수사권 조정 후 첫 사례
실수로 자기 집에 불을 낸 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숨진 80대 노파의 형사입건 여부를 놓고 검찰과 경찰이 고민에 빠졌다.경찰은 공소권도 없는 사망자를 입건해봤자 실익이 없다며 사건을 내사 단계에서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검찰은 사안이 경미하지 않다는 이유로 입건 후 송치하라고 연달아 지휘를 내리면서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12일 서울서부지검과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5월8일 오전 7시께 마포구 공덕동 우모(82) 할머니가 세들어 살던 재개발조합 소유의 집에 불이 났다.
불은 방 한 칸과 부엌 내부 16.5㎡ 가운데 8㎡를 태워 220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고 우 할머니는 두 다리에 2도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했다.
경찰은 병원에 찾아가 설득한 끝에 우 할머니에게서 ‘부엌에 촛불을 켜놨는데 방에서 나와보니 불이 나 있었다’는 진술을 받아 우 할머니의 실수로 불이 났을 개연성이 크다고 보고 내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고령인 우 할머니가 화상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고 기초생활 수급자인데다 집 소유주도 처벌을 원치 않는 점을 들어 우 할머니를 입건하지 않고 사건을 내사종결하겠다는 의견을 검찰에 냈다.
그러나 검찰은 “실화 자체가 중한 사안이고 피해자의 진술조서를 받을 필요가 있다”며 보강수사 후 입건해 송치하라고 지휘했고 우 할머니는 검경이 이처럼 지휘와 건의를 주고받던 중인 지난달 22일 병원에서 폐렴으로 숨졌다.
경찰은 우 할머니의 사망으로 공소권이 소멸되자 더욱이 입건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불입건 지휘를 건의했지만 검찰은 지난 7일 “입건 후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송치하라”며 수사지휘를 재차 내려보냈다.
경찰은 “집을 소유한 재개발조합 측이 화재를 문제삼지 않고 벌금이나 다른 집을 구하는 데 쓰라며 전세 보증금 1천500만원을 돌려주기로 했었다”며 “할머니의 과실이 인정되지만 수사 가치가 없는데다 피내사자가 이미 사망해 불입건 처리하는 게 사회정의에 부합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수사에 실익이 없다는 데는 동의하고 우 할머니가 사망하기 전에도 사건이 넘어오면 기소유예할 계획이었다”며 “논리적으로 불기소나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하려면 입건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처벌을 하지 않기 위한 입건으로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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