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처벌 앞서 신분회복 절차 배려
절도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법원의 배려로 16년 만에 ‘사망자’ 신분에서 벗어났다.이모(44)씨는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빌딩 앞에서 취객의 지갑을 훔치려다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절도범으로 그를 조사하다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지문을 토대로 인적사항을 조회한 결과 이씨가 법적으로는 이미 ‘사망자’로 처리돼 있었던 것이다.
이씨는 출생 직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큰아버지의 아들로 출생신고가 됐는데, 1992년 큰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가족들이 연락이 닿지 않던 이씨에 대해 실종 선고를 청구해 1995년 법원에서 심판이 내려지면서 호적상 사망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 이미 이씨는 절도죄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고, 실종 선고 후 10여 일이 지나 출소한 이씨는 졸지에 사망자가 된 신분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많은 불이익을 받게 됐다.
이씨는 법정에서 “호적상 사망상태이다 보니 신분증이 없어 출소 후 직장을 구하는 것은 물론 노동일도 하기 어려웠다”며 “호적을 살리려 해도 행정기관은 책임을 미뤘고, 교도소에 있을 때는 신청할 비용도 없었다”고 호소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이씨는 실종 선고 이후 절도 행각을 반복하면서 1995년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절도죄로만 5차례나 철창신세를 졌고, 출소한 지 3주 만에 다시 죄를 저질러 붙잡힌 것이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김형두 부장판사)는 이씨에 대해 형사처벌도 필요하지만, 사망자의 신분에서 벗어나 출소 후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변론을 맡은 남현우 국선전담변호사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후 재판부는 공판준비기일을 5차례 속행하면서 실종 선고 취소심판 신청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줬고, 결국 이씨는 지난 8월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취소심판을 받아 사망자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절도 혐의로 기소된 이씨에 대한 참여재판은 1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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