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칼로 찌른 아버지에게 법원은 실형을 줄 수 없었다

아들 칼로 찌른 아버지에게 법원은 실형을 줄 수 없었다

조용철 기자
입력 2015-10-18 18:02
업데이트 2015-10-1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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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백수 생활 ‘40대 아들’ vs 집 내주고 노숙자 된 ‘70대 아버지’


법원이 군 제대 후 20여년간 직업도 갖지 않고 얹혀사는 이른바 ‘등골 브레이커’(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는 철없는 자녀) 아들을 살해하려고 한 70대 아버지에 대해 선처를 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고령의 피고인을 부양하지 않고, 아버지를 노숙 생활까지 하게 만든 아들에 대해 인륜에 반하는 행동을 해 범행 동기를 제공했다고 꾸짖었다.
박모(72)씨는 중년이 되도록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아들(41)에게 불만과 서운함이 많았다. 그러던 중 아들이 “돈을 마련해주면 지방으로 가 살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자신이 살던 서울 마포구 2층 빌라를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고 인근 지하방으로 이사하면서 자금을 마련해줬다. 아버지는 옮겨간 지하방의 소유권까지 아들에게 넘겼다.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아버지의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아들은 아버지 곁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여자친구를 자주 지하방으로 데려오면서 아버지에게 방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수시로 방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불편해진 박씨는 결국 집을 나와 노숙을 하기에 이르렀다. 장성한 아들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에 집과 돈을 잃고 거리를 헤매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아버지의 분노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5월 아들은 아버지와 상의 없이 자기 명의의 지하방을 담보로 3900만원을 빌려 썼다. 7월 어느 날 새벽 술을 입에 잘 대지 않던 아버지는 만취 상태에서 지하방으로 갔다. 거실에서 태연히 잠든 아들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그날도 길거리에서 밤을 보낸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집 안에 있던 흉기를 들고와 아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잠에서 깬 아들은 흉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지만 아들을 쫓아다니며 팔, 등,복부 등을 여러 차례 찔렀다.
범행 후 그는 경찰을 찾아가 자수했다. 평생을 죄 없이 살아온 아버지는 나이 70살이 넘어 살인 미수라는 끔찍한 죄목을 달고 법정에 섰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 심우용)는 박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아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별다른 직업 없이 생활하면서 고령인 피고인을 부양하기는커녕 돈을 요구해 박씨가 노숙생활을 하게 하고도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는 등 인륜에 반하는 행동을 해 범행 동기를 제공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아버지 박씨가 초범인 점, 범행 직후 스스로 경찰에 신고한 점, 아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들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2015-10-1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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