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돈·권력의 ‘지식 하청업체’ 오명… 연구 독립성 키워야”

“대학, 돈·권력의 ‘지식 하청업체’ 오명… 연구 독립성 키워야”

이경주 기자
이경주 기자
입력 2016-05-09 22:44
업데이트 2016-05-1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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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시 보고서 조작 파장… 교수들이 말하는 ‘대학 연구의 위기’

서울대 수의대 조모(57) 교수가 옥시레킷벤키저 측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가습기 살균제 실험 보고서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자 대학 사회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그러나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일이었다”며 이번 일을 자정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분출됐다. 대학이 돈과 권력의 ‘지식 하청업체’가 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산업에 적합한 인재를 교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과 권력에서 벗어난 ‘연구의 독립성’ 확보가 절실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연구윤리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덕환(62)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무턱대고 산·학 협력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우리 대학 사회가 길을 잃었다”며 “눈앞의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기업과의 협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맞춤형 연구를 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옥시의 경우처럼 기업에서 요청하는 연구 수탁을 받을 경우 연구자들은 철저히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연구들은 기업과 비밀 유지 계약을 사전에 맺기 때문에 자신의 연구에 대해 세세히 밝히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강태진(64)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대학은 아직 나오지 않은 선도적인 분야를 연구하는 곳이지 기업에 맞춤형 연구를 해 주는 곳이 아닌데도 산·학 협력이라는 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목적성을 갖고 연구를 의뢰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이런 것들을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연구자들도 문제”라며 “목적성을 갖고 연구나 조사를 의뢰하는 곳들은 연구자들의 연구 성과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조작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임지현(57)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문제가 된 옥시 연구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임 교수는 “공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연구용역을 발주한 기업·정부의 입맛대로 쓰는 경우가 없지 않다”며 “학계나 지식계의 자정 능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정민(77)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는 “문제는 ‘작은 부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마음이 나중에는 ‘큰 부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며 “대학 시절 리포트 표절부터 하지 못하도록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표절, 연구자료 조작 등에 대해 의료 분야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은 다짐을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상진(53)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끔은 대학이 기업과 권력의 하청업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교수들도 연구용역을 수주해야 학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니 혁신과는 멀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과 연구자에게 요구되는 규범에서 어긋나고 있다는 점에서 통렬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성민(58) 건국대 인문학연구원장은 “대학은 전인적 교육을 하는 곳이며 취업만을 목표로 학생을 길러 내는 것은 대학교수들의 직무 유기”라면서 “정부도 대학 본연의 연구·교육 기능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문조(67)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연구자에게 지적 순결성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라면서 “연구 결과가 국가나 자본 등 외부의 힘에 의해 흔들려서는 결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몇몇 사례만으로 전체 대학 사회를 부정한 집단처럼 싸잡아 매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부분의 기업·정부 연구는 투명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사회의 연구 수요를 무시하고 상아탑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의견들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대 공대 교수는 “대학은 학문의 발전을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학생들에게는 취업이 최우선”이라며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야지 대학이 예전의 배움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이나 정부의 연구를 과도하게 수주한다고 비판한다면, 사회적 수요가 없는 연구를 하는 연구자에 대해서도 그 존재의 의미를 물을 수밖에 없다”며 “오로지 돈과 명예만 좇는 교수는 극히 일부”라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2016-05-1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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