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들 두 번 울리는 사회…취업·대출 미끼 사기 기승

약자들 두 번 울리는 사회…취업·대출 미끼 사기 기승

입력 2016-12-22 07:17
업데이트 2016-12-22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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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범죄예방 교육 강화하고 법 집행 엄정하게 해야”

경기불황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청년이나 돈줄이 막힌 서민, 오갈 데 없는 노인 등에게 취업, 대출, 경품 등을 미끼로 한 사기 사건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경기회복의 돌파구마저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를 두 번 울리는 파렴치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교육과 홍보, 사회 지도층의 준법정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취업·대출 미끼 사기 주의보

대학생 A씨는 최근 생활정보지에서 배송사원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해 지하철 택배 아르바이트를 했다.

몇 차례 서류를 전달하는 일을 하다가 자신의 계좌로 입금된 돈을 찾아 배달하는 업무를 맡았고, 수당도 건당 1만5천원에서 3만5천원으로 늘었다.

이후 사장이라는 사람은 잠적했고, 자신은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을 위한 대포통장 명의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처럼 구직자를 속여 보이스피싱 인출책으로 이용한 사례가 최근 몇 달 새 급증해 올해 11월 이후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제보만 134건으로 집계됐다.

사기 치려는 의도가 없었다 해도 본인 계좌에서 보이스피싱 자금을 대신 인출해 주면 민·형사상 책임이 따를 수 있다. 처벌을 받게 되면 구직 기회를 아예 잃을 수도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인터넷 구직사이트, 생활정보지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찾는 경우 정상업체가 맞는지 직접 방문해보는 등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대구 동부경찰서는 21일 구인·구직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줄 것처럼 속여 통장과 체크카드를 넘겨받은 뒤 9천만원가량을 몰래 대출받아 챙긴 일당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최근 경남 김해에서는 식자재를 납품하는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50대 여성에게 처우가 좋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속여 1천320만원을 받아 챙긴 60대가 쇠고랑을 찼다.

◇ 영세상인, 외국인 근로자, 사회 초년생도 표적

가뜩이나 장사가 안돼 시름에 빠진 영세상인의 등골을 빼먹는 일도 있었다.

대구 시내 식당, 이불·속옷 가게, 문구점, 공구상 등 소규모 점포 10곳을 찾아가 단체예약을 하거나 물품구매 예약을 하면서 “당일 수표로 계산할 테니 거스름돈을 먼저 달라”고 해 496만원을 챙긴 50대가 21일 구속됐다.

피해자들은 예약이 취소될까 봐 어쩔 수 없이 거스름돈을 먼저 줬다가 피해를 봤다.

서울 은평구의 한 전통시장 상인과 노인 등 61명을 상대로 매달 40만원을 25개월간 내면 차례로 원금과 이자를 받는 ‘번호계’를 운영하면서 무려 14억원을 가로챈 악덕 계주가 쇠고랑을 차기도 했다.

일용직 노동자인 한 피해자는 곗돈을 한꺼번에 낼 형편이 못 되자 일당 2만∼3만원을 모아 내기도 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국내 사정에 어두운 외국인 근로자와 세상 물정에 밝지 않은 사회 초년생들도 표적이 되고 있다.

경기 평택시에 있는 원룸 건물 40여 채 건물주로부터 월세 계약을 위탁받아 세입자 210명과 전세 계약을 체결하는 이중계약으로 60억원이 넘는 돈을 가로챈 부동산 중개업자가 지난달 구속됐다.

돈을 상당 부분 떼인 피해자 절반 이상이 코리안 드림을 안고 우리나라에 와 일하는 중국 동포였다.

경기 파주경찰서도 지난달 이중계약으로 세입자 32명의 전세보증금 10억원을 가로챈 50대 여성을 구속했다.

대다수 피해자가 2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으로 1인당 3천만∼5천만원을 사기당했다.

◇ 노인 상대 물품 사기 허다

경품 제공 등을 미끼로 노인을 불러모아 허위·과장광고로 폭리를 취하는 이른바 ‘떴다방’ 업자들의 사기 행각은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충북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올해 3월부터 3개월간 청주시 육거리시장 인근 건물 2층에 홍보관을 차려놓고 70∼80대 노인 150여 명에게 허위·과장광고를 해 물품 1억3천만원 어치를 판 일당 15명을 입건했다고 이달 12일 밝혔다.

이들은 화장지 등을 무료로 나눠주거나 건강 강연회를 미끼로 노인을 모았다. 팔만대장경을 새긴 도자기를 보여주며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떼인 돈도 받게 해준다”고 꾀어 7만원짜리를 48만원에 팔았다.

한국소비자원이 서울에 사는 65세 이상의 노인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4월22일∼5월2일)한 결과 77%가 최근 1년 사이에 악덕 상술 판매단에게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희숙 충북대 교수는 “적극적인 단속도 중요하지만, 떴다방 피해 예방 등을 위한 홍보와 유관기관 공조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 대해 이웅혁 경찰대 교수는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 지도층의 비행과 비정상적인 행동에 따른 실망은 전반적인 사회 규범을 약화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금은 법 집행에 대한 순응력이 떨어진 상태”라면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불법 행위에 대한 엄정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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