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라고 혼냈어도 아동학대일 수 있다

잘되라고 혼냈어도 아동학대일 수 있다

박재홍 기자
박재홍 기자
입력 2017-05-05 22:20
수정 2017-05-0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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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들어 고아원에 버린다 말해”…“내가 내 아이 가르치려고 때려”

올해 초 강원도 지역의 한 도시에서 30대 후반의 여성이 자신의 아이 둘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맡겨 놓고 사라진 일이 있었다. 엄마는 몇 시간 뒤 아이들을 데려가며 “아이들이 너무 말을 듣지 않고 말썽을 피워서 혼내 주려는 의도로 잠시 두고 갔던 것일 뿐 기관에 맡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아이 엄마는 평소 “자꾸 이렇게 엄마 말 듣지 않으면 고아원에 버린다”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은 기관이 정식 신고를 하지 않아 아이 엄마에게 법적 조치 없이 끝났다. 그러나 훈육과 학대의 인식 차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동복지 전문기관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관계자는 “아이의 엄마가 훈육을 목적으로 한 행동이었더라도 실제로 아이를 두고 떠났다는 점에서 유기학대로 볼 수 있다. 또 아이들에게 고아원에 버리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점은 정서 학대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엄마가 학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게 재단 관계자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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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5년 1만 9214건에서 2016년 2만 9669건으로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54.5% 급증했다.

반면 아동학대 신고를 받아 아이를 가해자에게서 격리 조치 등을 하는 피해 아동 보호명령 사건은 지난해 632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아동학대 당사자들의 인식은 과거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아동학대를 개선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가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피해 아동의 부모(80.7%)가 이를 학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강원도 아동보호기관 유기사건이 단적인 예다. 최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는 아빠의 폭력으로 격리조치된 중학생 수진(가명)양 사건이 접수됐다.

수진양의 친부는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도 “내 아이를 내가 가르치는데 이게 왜 학대냐”면서 자신의 학대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수진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거주하며 깨끗한 옷차림을 하고 다녀 주변 사람들도 학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아동학대 사례는 제3자가 봤을 때 명백한 경우인데도 가해자인 부모나 피해 아동은 스스로 그것이 학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아동학대 신고가 이뤄지더라도 추후 조치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명확한 아동학대의 기준이나 체계적인 매뉴얼이 갖춰지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복지부 산하 전국 61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아동학대사례판정위원회를 열어 학대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폭력, 방임 등 명확한 학대 정황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 강제적으로 취할 수 있는 제재 수단이 없어 난감한 상황이 적지 않다.

서울 경찰서에서 아동학대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아동학대 사실이 드러나 아이를 부모로부터 격리 조치하도록 결정이 내려진 경우에도 오히려 아이가 부모에게서 떨어지기 싫다며 결정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런 경우 격리 조치 없이 외부 모니터링만으로 추가 아동학대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고 이와 관련한 판례도 많아지는 만큼 현재는 다양한 기준을 만들고 있는 과도기라고 보면 된다”며 “최근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어 해결 방안 역시 다양하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은정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아동학대가 가정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다수인 만큼 당사자인 부모와 아이들이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을 얼마나 명확하게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부모들 스스로 내 아이를 학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2017-05-0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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