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생계 위해 가짜 확인서 써준 신용불량자에 과세 취소”

법원 “생계 위해 가짜 확인서 써준 신용불량자에 과세 취소”

입력 2017-05-14 11:24
수정 2017-05-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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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료 받고 대부업체에 ‘이자 수령’ 확인서…“실제 이자소득자가 세금 내야”

대부업체로부터 투자금에 대한 이자를 받았다는 거짓 확인서를 써준 신용불량자에게 세금을 부과한 것은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신용불량자는 생계유지를 위해 수수료를 받기로 하고 업체의 거짓 확인서 작성을 도왔을 뿐이어서 실제 이자소득자에게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윤경아 부장판사)는 A씨가 강동세무서장을 상대로 “세금 부과를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A씨는 2008년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의 부도로 신용불량자가 되자 생계유지를 위해 대부업체 운영자인 B씨로부터 수수료를 받기로 하고 이자를 수령했다는 가짜 확인서를 작성해 줬다.

문제는 2011년 국세청이 B씨에게 돈을 빌린 회사를 세무조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 회사가 대부업체에 건넨 이자 가운데 7천500만원을 A씨가 받았다는 내용의 확인서가 발견된 것이다.

확인서에는 해당 회사가 대부업체에 빌린 금액 중 25억원을 A씨가 투자 또는 대여했고, B씨가 업체로부터 받은 이자를 A씨에게 분배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세청은 A씨에게 이자수입에 따른 종합소득세 2천729만원을 부과했고 A씨는 이에 불복해 이의신청했다. 이후 세무서가 재조사를 했지만, 세금 부과가 정당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이자를 받지 않았다고 판단해 세금 부과를 취소하도록 선고했다.

재판부는 “확인서에는 차용금의 액수, 수령 시점·방법 등의 내용이 전혀 기재돼 있지 않다”며 “작성과 제출 경위도 불분명해 확인서만으로 A씨가 이자를 수령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자소득의 실제 귀속자는 A씨가 아닌 B씨 내지 그에 대한 투자자로 보인다”며 “A씨에게 부과한 세금은 관계 법령의 ‘실질과세’ 원칙에 반하여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실질과세는 소득, 수익, 재산 행위 또는 거래의 명의자일 뿐이고 사실상 귀속자가 따로 있을 때는 납세 의무가 귀속자에게 있다는 원칙이다. 즉 거래의 외관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실질에 따라 실제 소득·수익을 올린 사람에게 과세하는 것이다.

법원은 A씨의 재정상태, B씨가 세금 중 일부를 A씨에게 건넨 사실 등을 토대로 A씨가 실제 이자를 받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는 2008년부터 적은 액수의 근로소득만 얻고 있었고 2009년부터 세금을 체납한 상태였다”며 “A씨의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25억의 거액을 투자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B씨는 A씨가 이자와 관련해 부과된 세금의 지급을 요구하자 그 납부에 필요한 돈의 일부인 1천500만원을 지급했다”며 “업체 대표도 B씨가 투자자 중 한 사람이라고 진술했다”고 부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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