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메웠던 ‘태극기 집회’ 극심한 분열…‘朴재판’이 변수 될까

도심 메웠던 ‘태극기 집회’ 극심한 분열…‘朴재판’이 변수 될까

입력 2017-05-21 10:33
수정 2017-05-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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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구속·수뇌부간 음해로 구심점 잃고 최소 3개로 나뉘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친박(친박근혜) 세력 결집의 장이었던 ‘태극기 집회’가 최근 내분으로 상당한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탄핵심판을 전후로 우익세력 집회로는 상당한 위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일부 과격양상을 보이면서 시민들에게 외면받기 시작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을 주축으로 한 주최 측은 19대 대선을 거치는 동안 정치적 지향에 따라 극심한 내홍끝에 결국 분열됐다.

◇ “朴대통령님 사랑합니다”…도심 메웠던 태극기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선고가 임박했던 올해 3월 초까지만 해도 태극기 집회의 위세는 상당했다.

시작은 지난해 11월 19일 서울역 광장이었다. 이들은 “‘국가 전복 기도 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태극기를 들었다. 곧이어 친박단체 모임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가 결성됐다.

첫 집회 때 주최 측 추산 6만7천명(경찰 추산 1만1천명)이던 집회 규모는 갈수록 확대돼 작년 성탄 전날 6차 집회 때는 주최 측 추산 160만명(경찰 추산 1만5천명)이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들은 멀리 청와대가 보이는 덕수궁 대한문 앞을 집회 거점으로 삼고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를 외쳤다. 보수 개신교 단체가 힘을 보탰고, 친박 정치인들과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 일부까지 합류했다.

한겨울을 지나면서도 집회 규모는 상당한 수준을 유지했다. 주최 측은 올 2월 25일 14차 집회와 탄핵심판이 막바지로 치닫던 3·1절 15차 집회 참가자를 수백만명 규모라고 주장했다. 숫자 자체는 터무니없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많지만 3·1절 당일 높은 곳에서 촬영한 집회 행렬은 종로2가에서 숭례문까지 도심 약 4㎞ 구간에 걸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이날 처음으로 청와대 앞까지 행진도 했다.

집회는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 헌법재판소에서 편 논리를 광장에서 공유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이탈한 세력을 일부 회복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령 참가자들이 유튜브나 카카오톡 등 모바일 매체까지 활용해 탄핵 기각 논리를 전파하는 등 지지층 결집에 노력했다. 이는 이후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24%의 득표율로 2위를 기록하는 데 디딤돌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 탄핵선고후 ‘폭력시위’ 사태와 사망사고…대중들 외면

3월 10일 헌법재판관 8명이 만장일치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자 헌재 인근에 모였던 태극기 집회 참가자중 일부는 폭력시위로 돌변했다.

참가자 안전을 책임져야 할 주최 측이 단상 위에서 “헌법재판소로 진격하라”며 선동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대부분 고령인 시위대가 보호장구를 착용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보니 사고가 잇따랐다. 당일에만 참가자 2명이 숨졌고, 이튿날과 40여일 뒤 2명이 추가로 숨졌다. 경찰과 언론사 기자 수십명도 참가자들에게 폭행당했다.

이전에도 집회 현장에서는 ‘군대여 일어나라’, ‘계엄령을 선포하라’ 등 과격 문구가 적힌 피켓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탄핵이 인용되면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질 것”이라는 등 주최 측의 선동도 반복됐다. 이러한 모습이 많은 건전한 보수성향 시민들로 부터도 외면을 받는 요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朴 구속 후 구심점 잃고 사분오열…음해·고소·고발전도

탄핵 선고 이후 탄기국은 ‘국민저항본부’(국저본)라는 이름으로 ‘탄핵 무효’ 집회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단체들이 결집한 연대체라기보다 박 전 대통령 개인의 ‘팬클럽’ 성격에 가까웠던 국저본은 박 전 대통령 구속과 함께 구심점을 잃었고 집행부는 대선 정국에서 각자 정치적 목적에 따라 분열했다.

‘태극기 후보’로 불리던 김진태 의원이 자유한국당 경선에서 낙마하고, 박 전 대통령을 ‘향단이’로 지칭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자유한국당 후보로 추대된 것이 갈등의 시작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진태 의원은 홍 후보를 지지하며 돌아섰다. ‘태극기 애국신당’을 표방하며 ‘새누리당’을 창당한 태극기 집회 측은 같은 당 조원진 의원을 대선후보로 추대했으나 대선에서 성적은 득표율 0.1%(4만2천949표)에 그쳤다.

대선이 끝나자 태극기집회는 최소 세 집단으로 나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간 집회를 기획하고 주도한 정광용 박사모 회장이 새누리당 사무총장으로 남아 있다. 집회에 함께했던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고문과 정미홍 더코칭그룹 대표는 ‘새누리당 평당원모임’을 결성해 정 회장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태극기 집회 사회자였던 손상대 뉴스타운 대표는 ‘태극기혁명 국민운동본부’를 따로 만들어 극우논객 지만원씨 등을 영입했다.

이들 세 조직은 온·오프라인에서 서로 대선 실패의 책임을 돌리며 갑론을박하고 있다. 집회도 따로 개최되고 있다. 20일 정 회장은 새누리당 이름 아래 박 전 대통령이 수감된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손 대표 측은 대한문 앞에서 집회를 개최했다. 인원은 경찰 추산으로 구치소 앞이 약 400명, 대한문 앞이 약 300명이었다.

고소·고발전도 잇따르고 있다.

3월10일 태극기 집회 이후 사망한 참가자 4명 중 3명의 유족은 19일 정광용 회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정 회장이 ‘열사’로 추대한 사망자들의 유족이 두달 만에 되레 그를 고소하고 나선 것이다.

앞서 정 회장은 한 보수성향 시민단체 대표 정모씨로부터 태극기 집회 후원금 수억원을 배임한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경찰은 일단 3월10일 집회를 폭력시위로 변질시킨 혐의로 정 회장과 손상대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3일 박 전 대통령이 첫 재판에 출석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가 태극기 집회의 향후 추이에 한가닥 변수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공식적으로 두 차례 태극기 집회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바 있다.

그는 파면 전인 올 1월25일 ‘정규재TV’에 출연해 “(태극기 집회에) 촛불시위의 두 배도 넘는 정도로 정말 열성을 갖고 많은 분이 참여하신다고 들었다”면서 “눈도 날리고 날씨도 추운데 고생을 무릅쓰고…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태극기 집회 주최 측이 2월께 그의 생일에 맞춰 ‘100만 통의 러브레터’ 이벤트로 생일축하 겸 응원 메시지를 청와대에 전달하자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친박·우익단체 회원들은 박 전 대통령 재판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큰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19일 박 전 대통령 첫 재판 방청권 추첨이 열린 서울회생법원에는 그의 지지자들도 눈에 띄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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