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전 조선여성 미라 첫 부검 성공…“사망원인 동맥경화”

400년전 조선여성 미라 첫 부검 성공…“사망원인 동맥경화”

입력 2017-09-12 06:57
수정 2017-09-12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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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서울대병원, ‘CSI식’ 유전자분석으로 사인 규명

국내 연구팀이 질병 유전자 분석을 통해 17세기 조선시대 미라의 사망원인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사인은 요즘처럼 잘 먹는 사람에게나 걸리는 것으로 알려진 ‘동맥경화증에 의한 심혈관질환’이었다.

질병 관련 유전자 분석기술은 특정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참조용 표준 유전체(게놈)’와 비교해 해당 질병이 있었는지를 보는 방식이다.

미라 연구에서 사인을 규명하는데 유전자 분석기술이 활용된 것은 이번이 국내 처음이다. 외국에서는 2012년 유럽 공동연구팀이 5천300년 된 미라 ‘아이스맨’의 동맥경화증을 세계 처음으로 규명해 화제가 됐었다.

이은주(서울아산병원 내과)·신동훈(서울대병원 해부학과) 교수 공동연구팀은 2010년 경북 문경에서 발견된 1600년대 조선시대 여성 미라(사망나이 35∼50세 추정)의 사인을 유전자분석 방식으로 분석한 결과 ‘죽상동맥경화증에 의한 심혈관질환’으로 확인됐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온라인 국제학술지 ‘플로스원’(PLoS ONE) 최근호에 발표됐다. 해당 미라는 사망 당시 미혼으로 추정되며, 2010년 4월 문경시 아파트 건립 공사 중에 발견됐다.

죽상동맥경화증은 나쁜 콜레스테롤(LDL 콜레스테롤)이 동맥 안에 쌓이면서 혈관이 좁아지는 질환이다. 마치 오래된 수도관이 녹이 슬고 이물질이 쌓여 지름이 좁아지는 것과 같다. 죽상동맥경화증은 잘못된 식생활습관이나 유전적 요인이 원인으로, 내버려두면 뇌졸중과 심근경색 등의 심뇌혈관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은 우선 미라의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을 통해 죽상동맥경화증 가능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CT 영상만으로는 사인으로 진단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미라 내부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채취해 죽상동맥경화증과 관련된 유전자의 단일염기다형성(SNP)을 살폈다. 미토콘드리아 DNA를 가지고 연구한 것은 사체 표면 DNA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오염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첨단 유전자분석으로 범인을 잡는 미국의 과학 수사극 ‘CSI’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SNP는 사람에 따라 특정 부위의 DNA 염기서열이 변이된 것을 말한다. 예컨대 질병이 있는 환자와 정상인을 비교했을 때 특정 SNP가 나타나는 빈도가 유의하게 다르다면 그 SNP는 질병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이 결과 ‘문경’ 미라에서는 현대인에게서처럼 죽상동맥경화증 발생 위험을 높이는 7개의 SNP가 발견됐다. 이들 변이 유전자가 해당 여성에게 죽상동맥경화증에 의한 심근경색 등의 심혈관질환을 일으켰을 것으로 연구팀은 진단했다.

이은주 교수는 “최종 사인으로 밝혀진 죽상동맥경화증의 경우 고혈압, 당뇨병, 흡연, 고칼로리 식단, 고지혈증 등 다양한 위험요인을 가진 현대인들의 걱정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이미 우리 조상에게도 이런 질환이 생길 수 있는 유전적 소인이 있었음을 공식 확인한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 검사 표본이 너무 오래돼 통상적인 생물학적 조사 방법으로 질병을 확정 짓기 어려운 미라의 경우 이번 유전자분석 방식이 유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신동훈 교수는 “유럽의 아이스맨과 유전적으로 거리가 먼 동아시아의 개인 혹은 집단에서 죽상동맥경화증이 사인으로 확인된 적은 전혀 없었다”면서 “향후 영상의학적 소견이나 부검만으로는 뚜렷하지 않은 질병의 병리학적 진단 연구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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